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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제(周杰) 지금까지 맡은 역할은 <소년포청청(少年包青天)>에서

<포청청(包青天)>과 <황제의 딸(还珠格格)> 얼캉역 뿐이였다.. 

<소년포청청>에서 맡은 역은 많은 영광과 상 및 좋은 이미지를 받은 반면

<황제의 딸>은 그에게치명적인 재해를 가져왔다..

<황제의 딸>은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방송되어 많은 인기를 받았기때문에

응당 폭발적은 인기를 받아야 할텐데..

저우제(周杰)는 이 드라마를 촬영하고 엄청난 타격을 받았던 것이다. 

 

2004년 <황제의 딸>에서 쯔웨이(紫薇)역할을 맡은

린신루우(林心如)는 대만 예능프로 <강희황제 왔다(康熙来了)>에 출현하여

그당시 <황제의 딸> 촬영하면서 저우제(周杰)가

자기가 원하든 안하든간에 억지로 기습키스를 했다고 호소하여 

여린 척 하기 일쑤였던 린신루우(林心如)는

저우제(周杰)를 여론의 도마위에 올려놓는데 성공하였다..

 

이로 인하여 대만과 대륙의 팬들은 일제이 저우제(周杰)를 공격하였고..

그로부터 저우제(周杰)는 연예계에서 천천히 사라진듯 하고 소식이 없었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린신루우(林心如)의 원인도 있거니와

그해 저우제(周杰)에게 일어난 변고가 너무 많았고

그를 해치는 화살은 부지기수였다..

1970년생 저우제(周杰)는 섬서성 서안에서 태여났고

아버지는 철도국의 간부여서 가정 조건이 여유로운 편이였고.. 

저우제(周杰)는 누나와 남동생이 있었고

둘째인 원인으로 부모에게 무시당할수 있을것 같다.. 

3-4살 정도 되었을때 저우제(周杰)는 할머니와 함께 상해로 왔었고

상해에 옴으로 인하여 그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처음 상해에 와서 유치원을 다니는데 적응이 많이 안되었고

지방에서 온 원인으로  현지 애들과 어울리기 어려웠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혼자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는것이다 

 

그는 이러한 아무 재미 없는 유치원 생활이 싫었고

시간을 떼우기 위하여 슬그머니 유치원에서 뛰쳐나와 

도로에 나가 교통경찰 아저씨가 교통을 지휘하는 것을 보고

거의 하교시간이 되어서야 유치원에 들어갔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한 학생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선생님은 너무 놀라했고

저우제(周杰)을 한번 꾸짖은 후에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다른 학생들은 저우제(周杰)의 나쁜 행위를 본받을가봐

학교측에서는 저우제()할머니한테 다른 유치원에 보낼걸 권유하였다.. 

하지만 저우제(周杰)의 이러한 나쁜 행위가 전 상해의 유치원에 많이 알려져

어느 유치원에서도 이 학생을 받을려 하지 않았고 할수 없어

그를 그냥 방에다 가둬놨다고 한다.. 

 

그로부터 7살이 되어 학교갈 나이가 되어서야 자유를 얻게 되었고

3년동안 혼자 갇혀있는 원인으로 저우제(周杰)는 일찍이 

고독에 익숙해졌고 이러한 습관은 학교다닐때도 묻혀서 혼자 다니는걸 좋아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그는 불량학생들과 친해졌고

자기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친구는 어머님이 싫어하셨다.. 

저우제(周杰)어머니는 저우제(周杰)가 불량학생들과 어울려 노는걸

막기위하여 그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켰다.. 

저우제(周杰)어머니는 제우제(周杰)한테 좋은 공부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불량친구들 못만나게 할려고 학교를 자주 바꿨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워낙 조용한 성격에 더더욱 주변에 친구가 없게 되었다.. 

그는 학교시절에 시와 영화를 좋아했고

그의 몸에 박힌 예술적인 세포를 선생의 주의를 받게 되었으며. 

그래서 반의 다양한 활동에서 선생님은 그를 항상 시를 읊게 하였다..

저우제()는 처음으로 선생님의 인정을 받았고

시의 랑송은 그로 하여금 성취감과 자부심을 얻게 되었으며 

그 원인으로 그는 아나운서에 흥취를 갖게 되어

북경방송대학(지금의 중국언론대학)에 지원하였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고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저우제(周杰)는 낙방하고 말았다.. 

이번에 낙방은 결코 그에게 실망은 주지 않았고

그가 수능시험을 보는동안 연극학원과 영화학원에서도

학생모집한다는 공지를 들었고 바로 목표를 아나운서에서 연극으로 바꾸었다.. 

1991년 21살 되던해 저우제는 키와 피부 모두 배우의 특색을 지녀

유명한 배우 장만옥(张曼玉)이 주연한

영화<완안링위이(阮玲玉)>제작진의 선택을 받았고 

극중에 그는 오직 농구하는 장면만 몇개 있었지만

그에게는 배우로서의 성취감을 맛보게 하였다..

훗날 이 영화는 장만옥(张曼玉)의 인기작품으로 되었었고

제우제(周杰)도 함께 그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저우제(周杰)는 일본 만화영화인

<오트만(奥特曼)>의 더빙을 맏게 되었고.. 

초기에는 이런 유치한 만화영화 보는 사람이 있을가라는 의심도 갖게 되었는데.. 

생각밖으로 1993년에 방송된후 인기가 폭발적으로 올라갔고

애들의 가장 즐겨 보는 만화영화로 되었다

가장 인기있는 두개 작품을 맡은 저우제(周杰)는

학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받았고..

1993년 여름 저우제는 상해 여자애

우정(吴征)이란분과 연애를 하게 되었다..

우정(吴征)의 외모와 기질은 90년대 미적감각과 잘 맞아 떨어졌고

여자친구의 따스함을 느낀 저우제(周杰)는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저우제(周杰)는 연극학교를 졸업한후

바로 북경 국립 연극원에 들어가서

작은 조연출부터 하기 시작하였고 점차적으로 

주역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1996년 여자친구 우정(吴祯)은 다른 목표가 있었는데

남자친구 저우제(周杰)와 가까이 함께 있기 위하여 북경연극학원에 남아 

<황제의 딸>에서 주연을 맡은 조미(赵薇)와 같은반 친구가 되었다.. 

우정(吴征)과 저우제(周杰)의 감정은 1997년에 마감이 되었다고 한다..

그 해  대만 유명한 러브스토리소설가 츙요우(琼瑶)는

북경여행을 하면서 <공주무덤>을 지나면서

공주무덤에 관련한 설명을 듣고 무덤에 매장된 공주는

건융황제 민간에서 입양한 딸이란걸 알게 되었다..

이걸 배경으로 영감을 받은 츙요우(琼瑶)는 그날 저녁 북경을 떠나면서

<환주거거还珠格格(황제의 딸)>이란 대본은

이미 마음속에서 윤곽이 드러났다고 한다.. 

 

대만에 돌아온 츙요우(琼瑶)는 대본을 더 다듬이 바로 드라마

<환주거거还珠格格(황제의 딸)>의 대본이 생겨났고

드라마 촬영준비를 시작하였고 

츙요우(琼瑶)의 창작으로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 숨쉬며 배우들을 케스팅하였지만

주연배우들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츙오우(琼瑶)는 27살되는 저우제(周杰)와 만났고

바로 마음속으로 바로 그가 <푸얼캉(福尔康)>캐릭터라고

낙인 찍었다고 한다.. 

저우제(周杰)는 평소 연극단에서 중요하지 않은

조연출들을 맡았으며 연기가 결코 훌륭하지 않았다.. 

그래서 갑자기 츙요우(琼瑶)의 전화를 받은 저우제(周杰)는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라하였고

사극을 찍어본적이 없는 그에게 거절을 할 생각을 하였고 

게다가 이미 <백년부침(百年浮沉)>이라는 드라마와

계약했기때문에 갑자기 그 드라마에서

손을 떼는 거는 도리상에서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츙요우(琼瑶)의 드라마 대본이 워낙 매력적이였고

저우제(周杰)는 얼캉(尔康)의 캐릭터에 관심이 많아

아예 이를 악물고 계약하였고..

이 드라마로 인하여 저우제(周杰)는 정상의 반열에 오를수 있었고

마침 그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복과 화가 겹쳐 저우제(周杰)의

명성이 구겨지기 시작한것도 이 드라마때문이였다.. 

당초 즈웨이(紫薇) 캐릭터는 조미(赵薇)기 맡기로 했는데

촬영 일주일전 갑자기 린신루우(林心如)가 대만에서 날아왔고

즈웨이(紫薇)의 캐릭터를 맡게 되었고 ..

그녀의 천성적으로 여리여리해 보이는 외모와 부드럽고

찰랑찰랑한 말투가 이 캐릭터에 딱이였기때문이다. 

그래서 조미(赵薇)는 다른 주연인 쇼얜즈(작은 제비) 캐릭터를 맡았다.. 

드라마 촬영 시작하면서부터

대륙의 배우들과 대만의 배우들로 패를 가르게 되었고

서로 배척을 하였으며

바로 린신루우(林心如)의 갑작스러운 투입이 배척의 원인으로 되었다

저우제(周杰)는 연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츙요우(琼瑶)의 대본에서

일부 글자의 발음을 스스로 바로잡는 경우가 많았었다..

츙요우(琼瑶)의 소설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든 작품이 엄청 많았고

그분의 작품으로 많은 배우들이 인기를 받게 되었으며

츙요우는 전체 중화권에서 유명한 러브스토리소설가이다..

그의 기존의 규칙으로 대본의 대사뿐만아니라

문장보호 하나도 수정하는거는 용납이 안되었다.. 

하지만 츙요우(琼瑶)는 이 드라마의 대부분 청시자는

대륙분이라는걸 알고 있기때문에 저우제(周杰)의 제안대로 수정을 하였었고..

단순히 발음법을 수정하였을뿐 실제 내용은 결코 수정하지 않았다.. 

 

다른 대만 배우들은 저우제(周杰)가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오해 하여 일부러 트집을 잡아 협력을 잘 안해줬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황제의딸(还珠格格)>의 촬영과정에서 

서로의 불화설이 전해졌다고 한다 

그당시 린신루우(林心如)는 저우제(周杰)와 키스신을 촬영할때

츙요우(琼瑶)는 린신루우(林心如)의 몰입되지 않은 상태에 

불만을 토로하였다.

린신루우(林心如)는 저우제(周杰)의 대사를 수정하는데 대해서

불만을 가져 애틋한 감정을 연기할수 없었다.. 

저우제(周杰)는 사적에서 주동적으로 린신루우(林心如)와 가까이 하여

감정을 키웠고 그를 초청하여 함께 차를 마시면서 토크도 하여

서로 익숙해졌고 오해도 풀렸으며 천천히 호흡을 맞춘뒤

두사람의 키스신이 여러사람들 감동시켰다..

 

그들의 키스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을때까지 사랑한다는

비장함을 보여줬고 이러한 장면은

츙요우우(琼瑶)러브스토리에 가장 적합하였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최고치에 도달하였고

극중의 배우들은 모두 최고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주연캐릭터를 맡은 몇몇 배우들은 이미 최고 스타로 등극하였다.. 

 

<황제의 딸>의 폭발적인 인기로 제작진은

즉시 제2부를 촬영하기 위하여 인원을 모집하였다

 

<황제의 딸>제2부 촬영을 마치고 홍보단계였을때 

저우제(周杰)가  연예계에서 안좋은 입소문이 퍼졌다.. 

1999년 <황제의 딸> 제2부가 대만에서 방송되었고

대만의 관례에 따라 주연배우들은

반드시 대만에 가서 홍보활동에 참여해야 했다.. 

대만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 저우제(周杰)는

그때 마침 여자친구 우정(吴征)의 헤어지자는

메시지를 받게 되었고 이에 충격을 받은

저우제(周杰)는 떠나가는 사랑을 잡기 위하여

츙오우(琼瑶)한테 휴가를 부탁하였다..

다음날 드라마 홍보활동을 진행하는데

주연인 저우제(周杰)가 현장에 있지 않은것이

합리적이지 않았고 츙요우(琼瑶)는 휴가요청을

받아드리지 않고 싶었지만 

하지만 저우제(周杰)의 끈질긴 고집과 여자친구와의 애틋함에

러브스토리 소설을 전문 작가인

츙오우(琼瑶)는 감동을 받고 거의 불참을 허락해줬다. 

대만 매체의 기자들은 주연인 저우제(周杰)를 현장에서

만나지 못했기때문에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하였으며

그때 저우제(周杰)의 머리속에는 온통 헤여지자고 하는

여자친구만 가득하여 가장 빠른 시간으로

여자친구옆에 갈 생각뿐이여서 기자의 인터뷰요청에 그냥

<물어볼거 있으면 츙요우(琼瑶)선생님한테 물으라>는

짧은 답변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기자회견에서 착오적인 의견이 돌았고 다들

그의 기자회견에서 자리를 비운데 대하여 제작진스텝들한테

의견이 쏟아졌으며 잘난척 한다는 등등 원성이 자자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저우제(周杰)는 대만의 시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다행이 이번 걸음에서 저우제(周杰)는 여자친구의 마음을 겨우 돌려세웠고

<강산>을 미인과 바꿀수 있다는 결심은 누구도 있는 법이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제우제(周杰)는 츙오우(琼瑶)의 미움을 받으면서

사랑하는 여자 마음을 겨우 돌려세웠는데 결국에는 끝까지 가지 못했다.. 

대만에서 민심을 잃은 저우제(周杰)는 대륙에서 인지도에는

영향이 미치지 않아 그해 <황제의 딸>로 인기를 얻은

제우제(周杰)는  런쵄(任泉), 리빙빙(李冰冰), 청또오밍(陈道明)등

중화권에서 거물급 배우들과 합작으로  드라마

<소년포청청>에서 포청청 캐릭터를 맡았다.. 

이 드라마는 2000년에 전국내 방송되었고

저우제(周杰)가 연기한 포청청 이미지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히 새겨졌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제우제(周杰)에게

명분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비방이 생겼다..

저우제()는 제작진에서부터 동료를 존중하지 않고

지각이 흔하고 엄청 잘난체 하며

더 심한건 사람들을 모아 사람을 때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후에 확인된 일로 사람들을 모아 누구를 때렸다는 사실은 없었고

그냥 제작진이 출연료를 제때에 지급하지 않아

친구들과 함께 출연료 받으러 간거뿐이라고 한다.. 

동료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소문에서

유명한 배우 리빙빙(李冰冰)이 제우제(周杰)를 대신하여

그가 연기에 정성을 다 하나는 사람이고 촬영장에서

동료들과 연기력 다툼을 벌였지만

동료들을 존중하지 않는것은 결코 아니라는것을 증명했다..

지각도 자주 하고 잘난척도 한다는 소문에 대해서

홍콩의 유명한 배우 정페이페이(郑佩佩)는 인터뷰에서 확실히

이 소문에 대해서 오해를 한다고 이야기를 하였고

그는 항상 늘 주동적으로 제우제(周杰)를 모닝콜을 해준다고 한다.. 

극중에서 정페이페이(郑佩佩)는 저우제(周杰)의 엄마 캐릭터를

맡았을뿐만 아니라 생활속에서도

진짜 엄마처럼 저우제(周杰)를 아껴주고 따뜻하게 관심을 가져줬다고 한다.. 

기자들은 앞에 모닝기상을 해준다는 점을

미친듯히 매체에 내보냈고 많은 사람들은 일부러

정페이페이(郑佩佩)가 하는 이 말을 간과하였다..

이 말은 "극중의 남주연배우의 분량이 많기 때문에

하루 촬영 끝나면 엄청나게 피곤하고 지친다..

저우제(周杰)는 착한 아이이고 너무 지친몸을

움직일수 없어서 나오는 신체적 반응일뿐이다" 고 하였다.. 

사실상 정페이페이(郑佩佩)는  저우제(周杰)한테

모닝콜을 딱 한번밖에 안해줬고

그후로 저우제는 미안함을 느껴 두번다시

지각이 없었다고 한다.. 정페이페이(郑佩佩)는 보통

누구를 칭찬하지 않은데 저우제(周杰) 대해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저우제(周杰)는 지금까지 합작한 배우중에

가장 호흡이 맞고 편안했다"고 하였다.. 

시청자들은 매체의 유혹에 넘어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제우제(周杰)에 대한 오해를 갈수록 커졌다.. 

 

<소년포청청>에서 안좋은 소문이 가라앉기전에

린신루우(林心如)가 대만예능프로<강희황제 왔다(康熙来了)>에

출현하여 한 말이 저우제(周杰)를 완전히 깊은 미궁창에 밀어넣어버렸다.. 

이 프로의 엠씨 <쇼s>는 린신루우(林心如)한테 키스신을 촬영할때

상대방이 혀를 내미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고..

이렇게 폭발적인 화제를 엠씨 <쇼s>가 잡고 놓지 않았고

<쇼s>의 끈질긴 물음끝에 린신루우(林心如)는 어색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전에  드라마 <황제의 딸>을 촬영할때 저우제(周杰)와 키스신이 있었는데

저우제(周杰)는 미리 인사도 없이 키스신 촬영을 시작할때

혀로 그의 이빨을 헤집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끝내고 그녀는 즉시 입을 막고 웃기 시작하였고 본의 아니게

<그가 고의적이 아닐것이다..

필경 그는 즈웨이(紫薇)을 엄청 사랑했으니>라고 말하였다..

지금 그의 말을 돌의켜보면 <현대백련화(现代白莲花)>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녀의 말에 더욱 허점이 많다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2004년 린신루우(林心如)는 쯔웨이(紫薇)캐릭터를 맡으면서

관중들한테 그녀는 <너무 나약하여 스스로 자립 못하는 > 필터를 안겼다..

기자들은 이 <혀키스>사건에 대하여 제멋대로 떠벌린 상황으로

시청자들에게 나약한 여자를 아끼는 마음을 심어주었고

저우제(周杰)를 나쁜사람으로 몰아붙혔다

이<유엔비언>의 화살은 저우제(周杰)에게 패가망신의 시작뿐이였고 

2005년 드라마 <황제의 딸>에서 <얼타이(尔泰)>의 캐릭터를 맡은

천즈펑(陈志朋)은 <저우제(周杰)는 촬영장에서

쑤유우펑(苏有朋)을 괴롭혔다>고 한마디 하였고

네티즌들은 제우제(周杰)의 혀키스에 대한 불만이 사그라들지 않았는데

이로 인하여 그의 호감도를 또 한번 떨어뜨렸다.. 

2007년 저우제는 영화 <강남의 스토리(江南往事)>를 촬영하면서

여배우와 대사한마디때문에 폭력을 할번했다고

소문이 돌았는데 관중들의 기존의 그에 대한 불신으로

이 소문을 기본상 믿었다고 한다..

그후로 2009년 차사고에서 저우제(周杰)를

사람마다 때려잡으라고 소리치는 길가의 주로 만들었다.. 

북경 어느 한거리에서 저우제(周杰)는 럭셔리카를 운전하면서

택시한대와 충돌하였고 그 사고로 현장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으며 택시에 있는 세사람은 혼미상태에 빠졌다..

럭셔리카를 운전한 저우제(周杰)는 뺑소니쳤고

원래는 럭셔리카 소유주의 정체를 추적하고 있는 중

구경꾼들의  <운전기사는 <황제의 딸 주연 역할을 한 얼캉(尔康)>이였다는

한마디에 저우제(周杰)를 완전히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일시에 의론이 분분하여

어떤이는 저우제(周杰)의 무책임함을 지적하고

어떤이는 그의 인품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저우제(周杰)본인은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응수해 결국 법정으로 본인의 결백을 입증하였다.. 

밝혀진 결과로는 택시가 교통규칙을 위반하여 발생된 사고였고

저우제(周杰)의 특수 신분이기도 하고

또한 새로 구입한 차량이 아직 번호판을 달지 않았기때문에

대중들은 그를 질책하게 되었던 것이다.. 

2016년9월 저우제(周杰)는 7년이란 시간을 들여

본인 아무런 잘못이 없는 명백함을 밝혔다고 한다.. 

사실 그때 당시 사고 발생된후 저우제(周杰)는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하였었다..

하지만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유명한 "스타"라는걸 알고

저우제(周杰)를 향해 사진을 찍느라

플래시를 떠뜨려 구조하는데 애를 먹였고 당황하였다

마침 한겨울이였고 옷도 가볍게 입어서

20분정도 대기한후 현장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2016년 한 네티즌에서 의해 들통났다.

그 네티즌은 ."그때가 분명이 여름이였는데.

.당신은 왜 겨울코트 있었는지??

아니면 차사고가 한번 더 있었던 모양인데" 라고 반박하였다..

2009년 저우제(周杰)의 해명과 모든 확실한 증거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천자들은 이를 믿지 않고 변명만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쩔수 없어 저우제(周杰)는 기자회견을 열어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연예계를 은토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수 있다고 "얘기하였다고 한다.. 

그해 그는 본인 아니게 강제로 <7가지 죄>를 뒤집어 쓰고 말았다..

저우제(周杰)는 긴 연설에서 린신루우(林心如)가 대만 예능프로인

<강희황제 왔다>에서 했던 말들의 허점을 다각도로 분석했고 

네티즌들은 수년째 어린 시절의 필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린신루우(林心如)의 인품을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저우제(周杰)의 반론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다..

드라마 <황제의딸>의 제작과정에서 참여한 스탭들

및 배우들은 모두 대만사람들이였고

만약에 저우제(周杰)의 과분한 행위를 했다면

그분들 가만히 보고만 있을리가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린신루우(林心如)는 저우제(周杰)가

억지로 키스를 했다는 얘기는 오직 대만의 예능프로인

<강희황제 왔다>에서만 했었는데

이는 아마 대륙의 사람들 대만의 방송을  볼수 없기때문에

그들한테 들키지 않을거라는 착각이였다고 한다.. 

위의 문장은 저우제(周杰) SNS에 본인의 입장을 올렸다..

<사랑하는 팬들 자세히 생각해보렴,

황제의 딸을 촬영하면서 만약에 내가 강압적으로

린신루우(周杰)를 키스를 했으면 그녀는 왜서 그 자리에서

스텝들한테 항의를 하지 안했냐..

그 스탭들 과연 나하고 친인관계였을가?

왜서 몇년 지난후 대만의 예능프로에서 그 얘기를 했을가?

원인은 간단하였다.. 린신루우(周杰)는 대륙의 사람들

대만의 방송프로를 못볼거라는 착각이였때문이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대만의 방송도 어렵지 않게 볼수 있는데 말이죠.. ..등등 >

 

저우제(周杰)는 업게에서 가장 독특한 사람이 되었고

2015년에 모두가 명리를 위해 사투를 벌일 때

그는 연예계에서 은퇴를 하여 집에서 농사를 짓는다..

 

저우제(周杰) 집에서 짓는 농사는

일반인이 재배할수 있는것이 아니였고..

그는 농업 전문가를 조밍하여 재배한 쌀이

500그람에 68위안(15000원정도)로 팔리는 고가의 입쌀이였다..

 

그도 농민부호들처럼 단순히 농업일만 하지 않았고

2004년에 조용히 영화제작사를 설립하였으며

지금은 그 산하에 3개 회사가 있다..

또한 프랑스에는 자체 와인농장과 독자적인 본인 와인 브랜드가 있다.. 

 

조용히 행동하는 저우제(周杰)는 줄곧 공익을 위해 일했고

그는 단지 떠벌릴 가치가 없을 뿐이었다..

그는 평소에 예술품을 소장하는 좋아하고 예술품이 쌓이고 쌓여

도저히 넣을 자리가 없으면 시장에 가져다 팔군 하며

그중 2019년에 소장품창고에 저장해둔 

이커란(李可染)화가의 작품 <산람송운(山岚松云)>을

3250만원(한화로 약 60억정도)에 판매했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부호 저우제(周杰)자먼 기특하게도

연기를 포기 하지 않았다

영화계에서 뮤지컬로 장르를 바꿨으며 전에 

<광서황제>캐릭처로 출연한 작품에서

광서황제의 초조함을 매우 생생하게 연기 하였다..

 

저우제(周杰)는 사업에서 성공적이었고

사랑에서도 행복한 결실을 맺었다고 한다.  

첫사랑 우정(吴征)과 헤어진 뒤 스캔설은 두번뿐이였고

요 몇년동안 저우제(周杰)는 그야말로 속세속에 조용하게 지냈고 있었다,

 우습게도 저우제(周杰)처럼 논란이 많은 사람으로

그의 초심과 원칙은 연예계에서 그야말로 극히 드물었다..

연기는 베테랑, 순진한 감성, 자선이 몸에 지닌 분, 사업성취,

오늘날 저우제(周杰)는 사람들한테 보여준 강점은

역시 동료친구들의 덕이였다고 한다.. 

살면서 정신을 차리기 어렵고 이런 큰 도량은 

저우제(周杰)로 하여금  많은 기적을 이루게 하였고 

다른 사람이였으면 아마 오래전부터 수년의 악담을 참을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가장 흉악한 것은 예리한 칼같은것이 아니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입으로 한 사람의 앞길을 쉽게 망칠수 있다..

다행히 저우제(周杰)는 이런 유언비어에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역류하여 성공을 거뒀으며 

칭찬은 언제든지.. 해도 좋지만

남을 헐뜻는 말들은 반드시 심사숙고하고

입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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