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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21
    가장 약한 한국(韩国)이 무슨 근거로 전국칠웅(战国七雄)이 될수 있었을가?

제초진연조위한(齐楚秦燕赵魏韩)

역사상 전국7웅(战国七雄)으로 불리고 

춘추오패(春秋五霸)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나라마다 한군데 한군데의 하이라이트가 있으며

아무리 나약한 연국(燕国)이라도

또한 락의(乐毅)가 5개국 연합군을 이끌고

벌제(伐齐--제나라 공격)할 절정의 순간도 있었다..

오직 한국(韩国)만이 별다른 존재감이 보이지 않았다



<사기.한세자(史记·韩世家)>를 잃어보면

한국(韩国))은 많은 전쟁에 참여했다는걸 발견할수 있지만

대부분은 침략을 당하는 상대로만 나오거나 한다..

가장 많이 나오는 문구에는 "진발아(秦拔我)xx",

"진벌아(秦伐我)", "위패아(魏败我)", "위공아(魏攻我)"…

 

기원전260년 진나라()와 조나라()는

한국(韩国)의 상당지역(上党地区)을 쟁탈하기 위하여

장평대전(长平之战)을 벌렸으며

죽도록 싸우다가도

주인인 한국(韩国)은 공포에 질려 숨죽이고,

그 광경은 러일전쟁에서의 청나라왕조와 같았다. 

 

지도상에 보면 한국(韩国)의 국토 면적은 많이 작았으며

9만평방키로 정도밖에 안되어 칠웅(七雄)중에 가장 작았고..

초(楚国)나라의 5분의 1도 안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韩国)은 가장 중심에 위치하여 항상 침략을 받았다..

 

면적이 가장 작고 여기저기서 침략받는

한국(韩国)이 무슨 근거로 칠웅(七雄)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1.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못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나은 편이다..

 

한국(韩国)의 세력은 약하지만

세 집이 아직 분진되지 않았을 때는,

한국(韩国)은 잘 나갈때였다..

기원전385년 한국(韩国)이 정국(郑国)을 진공하여

바로 양성(阳城)을 점령하였고

기원전 380년에는 제국(齐国)이 혼란스러움을 이용해

한국은 군사를 거느리고 상구(桑丘)를 공략하였으며

기원전 376년에는 한상후(韩哀侯)와 조위(赵魏)와 진국(晋国)을 나눠가졌다..

또 다음해 그러던 중 정국(晋国)을 통째로 삼켜 버리고

신정(新郑)으로 도성을 옮겼다.

 

춘추시기 송정(宋郑) 이 나라는 그냥 이류세략이였고..

한국(韩国)이 그들을 소멸할수 있다는건 능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2. 지형적으로 가져온 우위

 

한국(韩国)의 국도는  동에서 림주(林州)에서부터

서쪽으로 한성(韩城)까지,,북으로는 장야(长冶)에서부터

남쪽으로 심양(沁阳)까지로산서(山西)성의 전체,

하남성(河南)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산서성의 일부분은 여량산맥(吕梁山脉)과 태항산맥(太行山脉)사이였다..

조위한(赵魏韩) 세집이 진()나라땅을 나눠가질때

한국(韩国)의 승상 단귀(段规)는 한강자(韩康子)한테 귀띰해줬다.

."땅을 나눌때 꼭 성고(成皋)를 요구하라고"고 하였다..

한강자(韩康子)는 의아하여 물었다.

"성고(成皋)는 인가가 없어 풀 한 포기도 나지 않는데,

안좋은 땅을 가져서 뭘 하겠느냐?"

단귀(段规)는 답하기를

"면적은 크지 않지만 천리의 지역을 잃을수 있는 결정과

연관되므로 지세에서 유리합니다..

만명으로 삼군을 공략할수 있으며

만일 제 제안을 받아드리신다면

한국(韩国)은 꼭 정국(郑国)의 땅을 뺏을수 있습니다." 고 하였다.. 

 

성고(成皋)는 한국(韩国)이 정국(郑国)을

멸망하는 시발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도 중요한 완충지가 되었다는 것이

단귀(段规)의 말이다.

 

한국(韩国)은 삼천군(三川郡)과 상당군(上党郡)이 굳게 연결되었고

또 두개 큰 산맥을 등지였으며

으로는 황하가 지리적으로 훌륭한 방벽으로 되어

자연적인 전략적 월등함을 갖고 있다..

 

 

3. 변법은 부강하고, 과학 기술은 부강하다.

 

기원전 351년 한소후(韩昭候)는

법가(法家) 신부해(申不害)를 승상자리에 앉혔으며

이때부터 한국(韩国)에서 변법(变法)을 전개되었다..

 

신부해(申不害)는 일련의 조치를 전개하여

군주의 집권을 강화하였고..

우선으로 먼저 한국(韩国) 내부의 협씨(侠氏),

공리(公厘), 단씨(段氏) 등 3대 강족에 부터..

내부 조사를 시작하였고

그들의 특권과 토지를 회수하여 재산을 정리하고

국고를 가득 채웠다.

 

다음으로 '견공행상(見功行賞)으로 관직을 수여한다'고 했다. 

 

군사에서는 신부해(申不害)가 친히 한국(韩国)의 상장군으로 단임하였고

귀족의 친병을 국가의 군대에 편입시켜 엄하게 훈련시켰다..

 

중앙에 위치하여 전국 최대의 철광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도

핵심 과학 기술을 창조하여, 병기 제조에서 월등히 앞서고 있다.: "

"천하의 보검이 뭇사람인데, 소와 말은 육지에서 끊고,

물은 고니기러기를 잘랐다.(“天下之宝剑韩为众,陆断牛马,水截鹄雁”)",

"천하강궁노(天下强弩)는 모두 한나라에서 나가고,

멀리 있는 자는 굴 가슴을 괄폐하며,

가까이 있는 자는 살금살금한다(“天下强弓劲弩,皆自韩出,

远者括蔽洞胸,近者镝弇心”).".

. 개혁으로 부강해진 한국(韩国) "종신자신(終身子神),

국치병강(國治兵强)이며 한국(韩国) 침략자가 없다."

 

기원전 293년에 이르러 한국(韩国)은 많이 쇠약해졌지만

여전히 10만 대군을 이끌고 이궐 전투(伊阙之战)에 뛰어들어

진나라(秦国)에 대항할 수 있었다.

 

4. 좌우 양쪽에 수원이 맞닥뜨리면

바람에 따라 돛을 다는 것과 같다.

 

전에도 말했듯이, 한국(韩国)을 침략할려는 사람도 많지만,

전쟁이 날 때마다 한국의 동료들도 적지 않았으며

지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을 병탄했다고 해서

독식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전국(战国)전시기  군사개혁으로 강대해진

위국(魏国)은 한국(韩国)을 공격할때 조

진제(赵秦齐)가 적극적으로 달려와서 구조를 해줬고.. 

전국(战国)시기 후반부에 변볍(变法)후의 진조(秦赵)는

한국(韩国)을 공격할때

제위초(齐魏楚)도 바로 달려와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그장 유명한 <위()를 에워싸고 조()를 구하다>는 이야기에서

방연(庞涓)이 두 번째 출병해 한국(韩国)을 공격한 것은

제나라의 간섭을 받아 귀군(歸軍) 과정에서 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힘의 균형점으로 한국(韩国)은 오히려 숨 돌릴 공간을 얻었다.

 

5. 과정은 어떻든간에 끝까지 버텨서 이기면 된다.

 

전국(战国)시기 중반부에 중산국(中山国)도 한때는 강했고

한국(韩国)보다 못하지 않았지만

왜서 칠웅(七雄)에 못들어갔을가?

결국 진나라(秦国)가 아니라 조()나라에 의해 멸망된 것이다

 

칠웅<七雄>이란 단어를 가장 일찍이 제출한분은

동한반고(东汉班固)<한서(汉书)> 에서 응소(应劭)가 했던 말이고

바로 <칠웅(七雄), 진나라 및 6국을 말한다> 응소(应劭) 입장에서 보면,

진나라()와  멸망한 6개국이 그 역사의 주요 구성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국(战国)시대에 소소한 조연역할을 했던 국가도 있었고

여기에는 송(), 위(), 중산(中山)이 있었다..

그래서 가의(贾谊) <과진론(过秦论)>에서는

6개국을 더하여 이 세 나라를 합쳐서 9개국이라고 부른다.

 

 

다만 이들 국가는 한국(韩国)보다 영향이 적은 데다

진시황(秦始皇)과 천하를 통일하는 데도 별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하여 당나라시기 <사기색은(史记索隐)>에서는

"6국에는 한(), 위(), 조(), 연(), 초(), 제()가 있으며

진()과 합하여 7국이였으며 

또  6국과 함께 송(), 위(), 중산(中山)은 9국으로 

이 삼국은 너무 작고 또 일찍이 말망되었기때문에" 아예 무시해버렸다 

 

장평전(长平之战) 때  상당 지역(上党地区)을 내주고

다른 나라들이 갉아먹으니,

국토면적이 많이 줄어들어 3만평반키로밖에 안되었으며

진시항이 첫번째로 소멸한 국가이다.. 

하지만 실력에서 보면 이 순간을 잘 버티는 편이고

그 덕분에 칠웅(七雄)이라는 명칭을 얻었으니

한국에 대한 긍정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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