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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4.10
    백두산에서 촬영했던 무협소설거장인 <김용선생님>의 홍콩드라마 <설산비호> 30년 지난후 배우들 근황

드라마 <설산비호> 방송한지 30년 되었는데 그때 저는 아직 중학생이였습니다.

드라마에 완전 꽃힌 저는 아마 빠짐없이 다 본것 같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설산비호>는 무협소설거장인 <김용선생님>의 작품이고

홍콩 감독, 배우들로 촬영된 드라마로 백두산에서 촬영했다는게 신기하죠..^^

 

드라마에서 나오는 배우들 모습도 아직도 뚜렷하게 떠오릅니다. 

 

 

<김용(金庸)선생님>이 창작한 15부 무협소설중

<설산비호(雪山飞狐)>와 <비호외전(飞狐外传)>이  현실주의 가장 강한 작품이죠

 

이 두 소설은 1959년과 1961년 사이에 창작되었고 

김용의 데뷔작 '서검은원록(书剑恩仇录)'과 얽혀있지만

스스로 하나가 된 이야기, 세상의 모든 은혜와 원한을 담은 전설적인 작품들입니다. 

 

<김용(金庸)선생님>의  많은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작품중에

<설산비호(雪山飞狐)>와 <비호외전(飞狐外传)> 두 소설은

그 이야기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통상 하나로 합쳐집니다. 

1985년 왕천림(王天林) 감독하에 만들어진 TVB편이 평가가 가장 높긴 하지만

내륙의 시청자들한테는

오직 1991년에 만들어진 <설산비호(雪山飞狐)>가장 익숙합니다. 

 

1. 이 드라마는 40집 정도 되고 제작 규모도 엄청 컸을뿐만 아니라

창작에 부은 열정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저희 또래들.. 이 드라마에 가장 인상이 깊었었고

특히 드라마에 나오는 주제곡 <꿈을 쫓아가는 사람(追梦人)>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죠..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빠지지 않은 선택곡입니다. 

 

최근 저는 선명한 버전을 찾아 다시 보고 그 특징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다.

 

 

2. 이  드라마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현지에 와서 

촬영을 한 최초의 홍콩무협드라마이고  .

실제 장소를 찾아 촬영한 무협드라마의 개척자로

그 제작 규모는 현재도 여전히 뛰어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였다고 합니다. 

 

극중의 설산은 바로 백두산이였고 그때 당시

백두산의 현지 조건으로 촬영난이도가 엄청 어려웠음을 느꼈습니다. 

 

실내 장면은 장춘 영화 제작소에서 촬영했는데,

모든 장면은 실경 촬영이었고 

장관한 실제 설경을 볼수 있으며  보물을 숨긴 동굴도

심혈을 기울여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TVB편 무협드라마처럼  판막 쎄트장이 아닐뿐만 아니라,

박막 폭포도, 널빤지 벽도, 모자 쓴 스님도 없습니다. 

 

3. 설산비호 드라마의 스토리는 주역인 호일도(胡一刀)와

묘인봉(苗人凤)의 결투장면이 시작으로 전개되고 

다음으로 <비호외전(飞狐外传)>중의 후페이(胡斐)의 이야기가 연결됩니다. 

맹비()는 호일도(胡一刀)와 후페이(胡斐)를 차례로 연기하고

공자은(龚慈恩)은 호부인(胡夫人) 빙설아(冰雪儿)와 정령소(程灵素)역을 맡게 되며

이야기 줄거리는 원작에 충실하였습니다.

다만 세부적으로 약간 조절을 하였고 

가장 까다로운 원작을 선호하는 네티즌들도 나무랄데가 없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진가락(陈家洛)은 '서검은원록(书剑恩仇录)'의

남자주인공으로 설산비호 원작에 먹칠을 많이 하지 않고,

피규어처럼 당시 '서검은원록(书剑恩仇录)'을 본 적 없는

어린 시청자도 큰 호감을 느끼는 중요한 역할로 그려졌습니다.

 

4. 라안(罗安)작곡하고 라조건(罗助键)과 진위상(陈维祥) 작사를 한

주제곡<설중정(雪中情)>, 양경황(杨庆煌) 창작한

<나의 일편단심(我有一片心)> 및 라다우(罗大佑) 창작한

<꿈을 쫓는 자(追梦人)>등등 영화의 OST 들은

엄청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중 <꿈을 쫓는 자(追梦人)> 는 아직까지도 즐겨부르는 노래로 유명합니다. 

 

5. 드라마에 참여한 배우들의 규모는 방대하였고 

그중 대만에서 온 림위(林炜)와 여영응(吕莹盈)

및 홍콩에서 온 소씨(邵氏)의 맹비(孟飞) 와

TVB의 공자은(龚慈恩)과 탕진종(汤镇宗)등 유명한 배우들 있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온 무사성(慕思成)과

내륙에서 온 오우좬(伍宇娟)과 왕루요(王璐瑶) 등등 다양한 지역에서 모였습니다

 

 二

 

이 드라마가 만들어진후 1991년에 대만에서

처음으로 방송을 하였고 같은해에 내륙으로 들어왔으며 

드라마가  뜨겁게 달구면서 극중 배우들의 연기 행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연예계에서 서로 다른 인생 궤적을 밟게 됐습니다.

 

1. 맹비(孟飞)<호일도(胡一刀),

후페이(胡斐) 및 호씨집안 조상(胡家先人)> 역을 맡음

 

원작에서 <료동대협객(辽东大侠)> 호일도(胡一刀)는 체구도 크고 용맹하며 

그의 아들 <설산비호(雪山飞狐)>

후페이(胡斐)는 건장하고 용맹한 사나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을 맡은 맹비(孟飞)의 키는 170cm가 안되어

<가장 난쟁이 후페이(胡斐)>로 불렸지만 다행히 관중은 모두

"선입자 위주"라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게다가 맹비(孟飞)는 무술의 기초가 튼튼하여,

이러한 "선입자 부족"을 다소 보완하였다고 합니다. 

 

맹비(孟飞)는 산동에서 태여나고 상해에서 자랐으며

본명은 양안동(杨安东) 이였으며 어릴적부터

집에 삼촌한테서 무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무술을 알고 있는 맹비(孟飞)는

어릴적부터 조용한 성격이 아니였으며 15살에 홀로 광주에 가서는 

곧 몰레 홍콩으로 밀입국하여 홍콩에서 생계를 찾았습니다. 

 

 

맹비(孟飞) 가 갖고 있는 튼튼한 무술기초로

1971년에 소씨(邵氏) 가입시험에 합격되었으며

한동안 무술선생으로 일한후 바로 무협배우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맹비(孟飞)는 소씨(邵氏)의 정성기를 겪었으며

1985년에 소씨(邵氏)는 더는 영화촬영을 안한다고 하여

그는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면서 필리핀에도 갔었고

최종 대만에 와서 정착하면서 본인의 사업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합니다.

 

맹비(孟飞)가 출연한 많은 작품들중에

오직 내륙에서 방송된 <설산비호> 많이 가장 익숙하게 알려진 작품이였고..

드라마에서 그의 활력이 넘치는 기질과

살인미소는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을정도록 인기가 높았습니다. 

 

이후로 나이가 들면서.. 그는 연예계를 떠나 미용원을 차렸다고 하는데.. 

근년에 다시 내륙에 와서 영화출연을 한다고 하고..

작년에는 <란릉왕자치혈도봉(兰陵王之泣血刀锋)>에 출연하였습니다 

 

2. 무사성(慕思成)

<묘위사(苗卫士), 묘인봉(苗人凤)>

 

묘인봉(苗人凤)은 원작에서 무협이 엄청 높아

<천하 무적수>라고 자칭하였으며 이미지가 잘생기고

키도 커서 사람들은 그를 <금면불(金面佛)>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묘인봉(苗人凤)은 《설산비호》에서

호일도(胡一刀)와 친구로  되기도 하고 적으로 되기도 하였으며

한판 대결을 펼쳐, 세상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비호외전(飞狐外传)>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꼼수에 넘어가 하마트면

목숨을 잃을번했던 비극적인 인물이였습니다. 

 

한국 서울에서 태여난 무사성(慕思成)은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였으며 그의 준수한 외모로 확실이

<금면불(金面佛)>이란 별명에 맞는것 같고

관중들도 원작의 묘이봉의 이미지와

가장 맞는 배우라고 인정하였습니다. 

 

무사성(慕思成)은 일찍이 1969년에 데뷔를 하였고

그가 출현한 영화는 <견우직녀>였고..

그후로 다른 많은 영화 드라마에 출현하였지만

1992년 <아다이(阿呆)>마지막 작품을 끝낸후 은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영화계에서는 그만두지 않았었고..

무위영화회사(慕威电影公司)를 차렸으며 본인이 사장이 되어 

전문 홍콩의 영화를 한국에 파는 업무를 진행하였습니다.

 

오우성의(吴宇森) <영웅본색(英雄本色)>

이 바로 그가 홍콩에서 저작권을 구입하여 한국시장에 내놓았으며..

이 영화는 한국영화예 깊은 영향을 남겨줬다고 합니다. 

 

현재는 중국돈으로 몇억 재산을 갖고 있는 갑부라고 합니다.

 

3. 공자은(龚慈恩)

<빙설아(冰雪儿), 진령소(程灵素)>

 

원작에서 호부인(胡夫人)은 이름이 없었고

극중에서는 그를 <빙설아(冰雪儿)>라고 불렀으며 

공자은(龚慈恩) 한사람이 빙설아(冰雪儿)와

진령소(程灵素) 두역할을 겸해 하였습니다. 

그녀는 두 번 모두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질을 지녔으며,

가장 카리스마 있는 후 부인이자

가장 아름다운 진령소(程灵素)입니다.

 

원작에서 진령소(程灵素)의 용모는 일반적이였기때문에

후페이(胡斐)는 원자이(袁紫衣)한테 눈이 갔으며 

진령소(程灵素)한테 받아드리지 않고

나중에 진령소(程灵素)는 후페이(胡斐)를 위하여 죽음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원작 소설에서 이 감정을 그대로 출연하였고..

진령소(程灵素)의 역할을 맡은 공자은(龚慈恩)의 용모가

원자이(袁紫衣)의 역을 맡은 오우좬(伍宇娟)보다 못하지 않기때문에

많은 시청자들.. 이에 대해서  속생했다고 하며 

후페이(胡斐)가 원자이(袁紫衣)한테만 올인하고

진령소(程灵素)를 멀리한테 대해서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도 많이들 얘기합니다.

 

공자은(龚慈恩)은 TVB 소속 배우이며

그는 집안에서 외동딸로 원래는 피아노 선생이였습니다.

1984년 TVB에 입사하였고

그의 출중한 기질로  빠른 시안에 <대홍콩(大香港)>이란 작품에서

소위(舒薇)라는 주연역할을 맡았으며

주윤발(周润发) 및 관례걸(关礼杰)과 합작 하였습니다.

 

1996년에 장위건(张卫健)과 합작으로

<서유기>에서 관음보살역할을 맡아..

대중들한테 익숙한 배우였습니다.

 

공자은(龚慈恩)은 아직도 연예계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영화든 드라마든 좋은 역할이면 모두 출연을 하였습니다. 

금년 <후즈위추(呼之欲出)>의 영화

<칠인밴드(七人乐队)>에도 그의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

 

공자은(龚慈恩)은 두차례 혼인을 겪었고

건축업자 하진화와 1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왔으며

드라마 출연자 린웨이와 함께였으나 이혼했다고 합니다.

 

4. 오우좬(伍宇娟)

<원은고(袁银姑), 원자이(袁紫衣)>

 

원자이(袁紫衣)은 김용(金庸)소설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여자캐릭터였기때문에

첫화면으로 비구니로 나오게 되며

후페이(胡斐)와의 끊이지 않은 흐트러진 감정이 엮입니다.

 

진령소(程灵素)는 후페이를 위해 죽었고,

원자의(袁紫衣)도 서로 연관된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사실 김용()도 그 인물을 다루기 어려웠는데,

'설산비호' 속 후페이(胡斐)가 등장하는 솔로인 만큼

그의 사랑은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할 것이라는 설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원자이(袁紫衣)역할을 맡은 오우좬(伍宇娟)은

내륙에서 온 호남여자이며

그는 1986년에 데뷔를 하여

영화<잊지못할 중학교생활(难忘的中学时光)>에 출연하였습니다.

 

피거청(皮哥曾)이 소개로 1988년에

영화<열광한대가(疯狂的代价)>에 출연하였습니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그는 두개 역할을 동시에 맡게 되었으며

바로 협녀 원자이(袁紫衣)와 원자이(袁紫衣)의

어머니 원은고(袁银姑)역할이였죠

 

1991년에 오우좨(伍宇娟)의 가장 전성기 한해였고

이 드라마로 핫했을뿐만 아니라 황건중(黄健中)의

영화<용년경찰(龙年警官)>에 출현하여

대종영화백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연예계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금년에는

<상양부(上阳赋)>와 <강산이 이렇게도

아름답네(江山如此多娇)>란 영화에 출연하였습니다.

 

5. 탕진종(汤镇宗)

<전위사(田卫士), 전귀농(田归农)>

그때 중학교시절에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 개인적으로 드라마에서

이분이 가장 잘 생겼다고 생각했었죠.. ㅎㅎ

 

전귀농(田归农)는 소설중에 나쁜캐릭터였으며

그는 꼼수도 많고 나쁜일이란 나쁜일은 모두 저질으며 

묘인봉(苗人凤)을 이용하여

호일도(胡一刀)를 없애개 하고

또 비밀리에 독약을 묘인봉(苗人凤)한테 먹여

두사람을 다 없앨려고 음모를 합니다.

그후에는 보물이 숨겨 있는 지도(藏宝图)를 얻기 위하여

묘인봉(苗人凤)의 부인 남란(南兰)을 구술립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매우 처절하였습니다.

원인은 그가 극히 원하지 않은 자살을 했기때문입니다.

 

젊고 잘생긴 탕진종(汤镇宗)은

자신의 대범한 기질을 접고 독한 눈으로 인물을 잘 표현해냈고,

섬세한 연기는 관객들을 사로잡아

이가 갈릴 정도로 증오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전귀농(田归农)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탕진종(汤镇宗)의 형상이 떠오르게 될 정도였습니다.

 

탕진종(汤镇宗)은 TVB의 오호(五虎)중의 한사람으로 불리는

탕진업(汤镇业)의 형이고 동생 탕진업(汤镇业)의

영향으로 일찍이 TVB에 가입하였다고 합니다.

 

시청자들은 그가 1990년 고전 신화극 《봉신방》에서

연기한 백읍고에 비교적 익숙할것이며 사실 두 편의 촬영이

거의 동시에 진행된 반면, 탕진종은 '봉신방'에서 극소수 분량이였습니다.

 

하지만 백읍고(伯邑考)와 전귀농(田归农)을 보면

탕진종(汤镇宗)의 연기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고 .

한 사람은 착하고 잘생긴 젊은 귀족,

한 사람은 음험하고 악랄한 강호를 가진 사람은

탕진종을 쉽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요즘도 탕진종(汤镇宗)은 여전히 스크린에서 활약하며

작년에 드라마 <불타오르다(燃烧)>에 출연하였고

뒤에 두개 작품이 곧 출시된다고 합니다.

 

6. 왕루요(王璐瑶)

<묘뤄란(苗若兰)>

 

묘뤄란(苗若兰)은 묘인봉(苗人凤)과 남란(南兰) 사이에서

태여난 딸이고 원작에서는 전형적인 달달한 맹한 바보여자 역할입니다.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페이(胡斐)와 함께 있게 되었는데,

후페이(胡斐)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잃은 진령소(程灵素)가 불쌍했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왕루요(王璐瑶)

역시 묘뤄란(苗若兰)의 허당기운을 확실히 연기하며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남심을 자극했습니다.

 

왕루요(王璐瑶)는 1970년에  흑룡강성 할빈에서 태여났고

1986년에 데뷔를 하여 드라마

<생활에서 한페지(生活的一页)>에서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는 가수생활에서도 발전이 있었고..

같은행 태평양 음향회사와 계약을 맽고 첫 앨범인

<날 사랑하면 가지 마세요(爱我别走)>를 내놓아

100만장이 팔렸다고 합니다. 

 

 

왕루요(王璐瑶)는 90년대 후반에 억만장자였던

리철(李辙)한테 시집가며 2001년 6월에 딸을 낳았 걱정없는 부자생활을 하지만

그는 평범한걸 싫어해서 2002년에 또 다시 복귀하여 

장계중(张纪中)감독의

<천룡팔부(天龙八部)>에 출연하였습니다.

 

90년대 드라마는 아직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상태여서,

기본적으로 한 드라마는 질에 상관없이

국내에서 방송될 수 있었고.'설산비호'는 양심의 제작이였고   

단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느낌을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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