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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를 세웠던 주원장은 예전에 너무 가난하여 밥도 제대로 못 먹어 

황각사찰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었었다.. 

그후로 환속하여 홍건군봉기에 참가하여 명나라를 새운 개국황제로 되었다.. 

 

청나라 말기 한 비구니는 황제까지는 못되었지만 그의 생은 다른 비구니에 비해 

운이 좋았다.. 

환속후 부자남자와 결혼했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모르는 사람 없을정도로 

유명한 아들을 낳았다..

이 비구니는 성시 왕씨이고 1863년 절강성 승현() 갈죽촌에서 태여났다..

아버지는 장사하는 사람이고 토산품을 팔아서 돈을 벌었는데

사는데는 걱정없는 충족한 삶을 살았다.. 

근데..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풍운이 있을법으로 

그의 아버지는 1882년에 돌아갔고 그의 두 동생중 

큰 동생은 도박에 빠져있고 작은 동생은 정신병환자였으며

가족의 모든 생계는 19살밖에 안된 이 사람과 엄마 둘이서 짊어졌다.. 

 

엄마는 자기 딸 왕비구니가 좀 낳은 생활을 해주게 할려고 

그녀에게 청부혼인을 주선해 주었고 이웃남자와 결혼하도록 강박하였다.. 

왕비구니는 옆집 남자와 결혼하였고 남자는 매우 봉건적이여서 

자기 아내한테 자주 폭력을 휘두르고.. 왕비구니는 어쩌할 방법이 없어 그냥 참고 살았다..

 

결혼후 얼마 안되어 왕비구니는 아들을 낳았고 남편이 엄청 기뻐하였다..

그의 삶이 조금 낳아 보였는데 불운이 또 닥치였다.. 

바로 아들은 태여난지 얼마 안되어 죽었고 남편도 유행하는 콜렐라에 걸려 돌아갔다..

왕비구니는 20살도 안되어 아버지, 아들, 남편이 모두 돌아간후..

본인의 삶이 하도 슬프다고 생각하여 

사찰에 들어가 비구니로 되었다.. 

엄마는 그렇게 말렸지만.. 왕비구니의 결정은 막지 못하였다..

 

왕비구니는 사찰에서 매일매일 년불을 외우면서 하루하루 보냈고. 

어느 하루 점보는 사람이 그를 보고 장래 귀한 아들을 낳을거라고 얘기해준다.. 

왕비구니는 당연이 이 사람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본인이 비구니 몸인데   있을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계산은 자연의 이치보다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1886년 그의 사촌오빠가 소개를 해줘 장자오총(蒋肇聪)과 결혼을 하였고

아들도 낳았다.. 

장자오총(蒋肇聪)는 돈이 엄청 많은 재벌이고 

그 아래 염포와 전장(은행)이 있어, 현지의 10 대 갑부 중 한사람이다..

단 그의 아내 일찌기 돌아가서 혼자 고독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왕쌘앤뚱(王贤东)은  장자오총(蒋肇聪)의 직원이였고

좋은 마음으로 장자오총(蒋肇聪)한테 자기 사촌동생인 왕비구니를 소개해줬다.. 

장자오총(蒋肇聪)이 왕비구니보다 22살 더 많지만 장자오총(蒋肇聪)의 가정조건이 좋아

왕비구니한테는 부족하지 않다.. 

왕쌘앤뚱(王贤东)은 적극적으으로 두사람 연결시켜주고..

나중에 왕비구니는 환속하여 1886년6월에 장자오총(蒋肇聪)와 결혼을 하였다..

 

왕비구니는 장자오총(蒋肇聪)와 결혼하여 아들둘, 딸 둘을 낳았지만 딸 둘과 작은 아들은 금방 죽었고  다행히  큰 아들이 살아남았고그 큰 아들이 바로 전에 점쟁이 얘기해줬던 귀한 아들이였다.. 마치 하늘의 신선이 뒤에서  이 아들이 살수 있도록 도와준듯  하다.. 

 

만약에 이 아들도 죽었더라면 중국역사가 바뀌여질수도 있다..왜냐 하면 이 아들이 지금의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장제스(蒋介石)>였고..왕비주기는 바로 <장제스(蒋介石)>의 어머니인 <왕채옥王采玉>이다. 

 

1895년 장자오총(蒋肇聪)는 병으로 돌아갔고  어머니인 <왕채옥王采玉>은 귀하게 살아남은 이 아들을 엄청 열심히 키웠다.. <왕채옥王采玉>은 어려서 학교를 다녔기때문에..교육이 한사람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때문에여기저기 돈을 빌려 <장제스(蒋介石)>를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고.. <장제스(蒋介石)>는 일본육군사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 

<장제스(蒋介石)>는  나중에 손문선생의 후계자로 되었고 어머니 왕채옥<王采玉>는 <장제스(蒋介石)> 출세하기도 전에  지하에서 영면하였다

<장제스(蒋介石)>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 매우 슬퍼했고

어머니의 영구를 잡고 엄청 긴 시간을 무릎을 꿇고 있었다.. 

본인이 출세후 항상 돈을 들여 어머니의 무덤을 확장하였고.. 

이런 방법으로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려 하였다..

왕채옥(王采玉)의 비참한 일생에서 아들 하나뿐이고..

 

속담에 母凭子贵란 말이 있듯이 

귀한 아들때문에 이분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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