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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시내중심 모명로(茂名)에 위치한 금강호텔,, 상해 유명한 5성급 호텔이고..

개업 이래 지금까지 이미 100여 개국의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

그리고 수많은 갑부상인들이 찾았으며

상해 손꼽히는 유명호텔이고 

독특한 건물로.. 문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옛날 전쟁시기는 어려울 때 여자는 짐처럼 잘 버려지고

그러나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우리 힘으로 최고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강호텔을 창건하신분이 동죽군(董竹君) 입니다. 

동죽군(董竹君) 은 1900년에 상해에서 태여났고

그때 당시 가정 생활이 엄청 힘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상해시내에서 황보차(3륜차)로 돈을 벌었으며.. 

오랫동안 황보차를 끌고 다닌탓에 아버지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한층으로 깔렸습니다. 

어머니는 다른사람 옷을 씻어주면서 돈을 벌었고..

맨날 물에 손을 넣은탓으로 손이 주굴주굴해졌습니다. 

 

동죽군(董竹君)가 12살 되던해에 돈벌이가 너무 어려웠고 생활도 너무 가난하였으며

예쁘게 자란 동죽군(董竹君)을 본 부모는 딸 동죽군(董竹君)를

기생집에 팔았습니다. 

 

기생집에서 몸을 팔지 않고 그냥 노래 불러주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돈을 벌었고

이렇게 3년 지난후에 우연히 상해에서 혁명을 하는 분 하즈시(夏之时)를 알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몇년을 공부를 했던 동죽군(董竹君)는

곧 하즈시(夏之时) 와 만나면 얘기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점차적으로 서로 사랑의 싹이 트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즈시(夏之时) 집안은 엄청 부유하였고.. 

동죽군(董竹君)을 기생집에서 赎身 할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강인한 성격을 가진 동죽군(董竹君)은 

본인 생각이 따로 있었습니다.

赎身: 기생집의 기생들은 기생집에서 떠날려면..

돈을 기생집 보스들 요구하는만큼 줘야 

나올수 있는데 그 금액이 많아.. 많은 기생들..

그 돈을 낼수 없어서 .. 못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죽군(董竹君)는 하즈시(夏之时) 한테 

본인이 방법을 대서 赎身 기생집에서 빠져 나오겠다고 합니다. 

동죽군(董竹君)의 통념에는 만약에 내가 하즈시(夏之时)에 의해서 기생집에서 나온다면 

본인이 그냥 상품으로 정의된다고 생각하고..

혹시나 둘이 모순이 생기면 하즈시(夏之时)가

이 일로 자기를 협박할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며칠후 동죽군(董竹君)는 기생집문을 지키는

간수한테 술을 같이 먹자고 요청하고..

간수를 술먹여 취하게 한후 동죽군(董竹君)는

슬그머니 기생집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때 하즈시(夏之时)는 유부남이였고

동죽군(董竹君)는 첩으로 들어가는거 꺼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동죽군(董竹君)는 하스지(夏之时)한테

자기 일본에 유학가는걸 도와달라고 하고 

유학갔다와서 만약에 하즈시(夏之时) 혼자 몸이면

함께 가족을 이루자고 약속하엿습니다. 

 

하즈시(夏之时)가 약간 포악한 성격이 있어요.. 

동죽군(董竹君)한테 총을 주면서..

일본에 있는동안 만약에 자기한테 미안한 짓을 했을때는

이 총으로 자살하라고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혹시나 동죽군(董竹君)이 다른 남자 생길가봐

일본 가는데 하즈시(夏之时)는 자기 동생을

동죽군(董竹君)한테 붙혀 일본에 보냈습니다

동죽군(董竹君)는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이남자는 내 인생을 맡길수 있는 남자가 

아니라는걸 생각합니다.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후 동죽군(董竹君)은 하즈시(夏之时)와 함께 쓰촨(四川)에 왔고..

하즈시(夏之时)와 가정을 이룬후 아들딸을 낳았으며

곧바로 부호가족의 귀부인으로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활은 생각대로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919년 남편 하즈시(夏之时)는 상관을 잘 못 만나 면직되고 말았으며..

우울한 하즈시(夏之时)는 너무 비관하고 낙담해져 아편을 피기 시작하였으며

그러므로 하즈시(夏之时)의 성격도 엄청 나빠졌습니다. 

그 시기 동죽군(董竹君)는 페병에 걸려 격리를 해야 하기때문에.. 

혼자 따로 있는 집에 거주해야 했으며 그 기간 하즈시(夏之时)는 종래로 보러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워낙 하즈시(夏之时)의 대가족에 대해 동죽군(董竹君)는 항상  짜증나고 우울했고..

남편의 이러한 모습에 실망스러워 

나중에 하즈시(夏之时)과 이혼하려 했지만 남편이 동의를 안했다고 하고..

할수 없어 서로 의논하여.. 두사람 잠간 5년정도 서로 따로 살기로 하였으며

그때 다시 상황을 보면서 결정 하자고 합의 하였습니다. 

 

사실상 이 5년동안 하즈시(夏之时)는 한번도 아들딸 양육비를 지불하지 않았으며 

별거하면서 동죽군(董竹君)은 아이를 데리고 상해로 갔으며 

 상해에서 굶어 죽지 않으면 자기 손바닥으로

생선을 부치겠다고 경멸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굶어죽지는 않았지만, 

공장을 세운 동죽군(董竹君)은 전쟁의 불길 속에서

작업을 중단했지만 굳건히 아들딸 데리고 생활하였습니다.

1935년에 동죽군(董竹君)는 금강호텔및  사천요리식당을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식당은 중국, 일본 및 서양식의 스타일을 섞어서 인테리어 하였으며.. 

요리도 고급스러움으로 많이 유명해져.. 금방 많은 손님들 찾아 왔습니다. 

그외 옆에다 특별히 금강차집을 설립하여 여성들한테 일할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줬습니다

 

물론 금강호텔의 유명세로.. 그 시대

유명한 상해방 두목들 황금룽, 두월규 등 유명한 분들 단골손님으로 되었습니다. 

금강호텔은 지금도 운영하고 있으며

5성급 호텔로.. 해외 손님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고..

상해 대표하는 유명한 호텔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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