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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8
중국 명나라시기 장편 신괴 소설,
오승은(吴承恩)의 작품인데 당나라 황제의 칙명으로
불전을 구하러 인도에 가는 현장삼장(玄奘三藏)의
종자(从者) 손오공(孙悟空)이 주인공으로 쓴 소설로
1986년 양제이(杨洁)감독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지금까지도 인기 있는 드라마로 유명하였다..
80년대 만들어진 드라마여서 촌스러울번 한데.. 지금 봐도..
서유기 관련된 작품중에는 가장 친근성 있고
재미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된다..
80년대는 중국의 경제도 많이 떨어져 있었고..
그때 영화배우들의 출연료가 중국돈으로 하루
몇십원(한화로 몇천원정도)밖에 안되었으며
컴퓨터 및 설비도 열악한 상태에서 이러한
드라마를 만들었다는게 신기하기만 하였다..
초등학교시절에 나온 드라마로..
지금까지도 매년 학생들 방학이 되면
중앙방송국(CCTV) 방학 특집으로 방송되기때문에..
외울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양제이(杨洁)감독은 여자분이시고 그분은 스탭들과 함께
중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촬영을 하였고
나중에 통계에 따르면 24개성을 다녀
중국 거의 절반 이상을 다녔던 셈이다..
그럼 실제로 드라마 촬영중 매회 촬영장소가 어디였을가
드라마를 보면서 항상 궁금하였다..
그때는 어렸고 마을바깥으로 나가본적 없었으니..
지금은 많은 지역을 다녀봐서인지..
지금 드라마를 보면 저도 모르게
아~ 저곳이였구나 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1회에서는 촬영장소가 대부분 바다가였다..
손오공이 돌에서 뛰쳐나오는 화면은 바로
북대하(北戴河)에서 촬영하였다.. 여기에는 손오공이
기예를 배울려고 떼목을 타고 바다에서
떠다니는 장면도 북대하(北戴河)해변가에서 촬영되었다..
수련동(水帘洞)에서 나오는 폭포는
황과수폭포(黄果树瀑布)에서 촬영되었고
수련동(水帘洞)의 내부는
호남랭수강파월동(湖南冷水江波月洞)에서 촬영되었다.
2. <필마온(弼马温)>이란 관리직을 얻었다
손오공이 천궁에서 소란피운후 얻은
관리직-필마온(弼马温)을 촬영하는데
여기에 연관되는 시내 촬영장소들 비교적 많았었는데
대부분 중앙방송국(CCTV)과 북경육영학원(北京育英学院)의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다만 그중 은하수에서 말방목은 내몽고에서 촬영했었고
그후로 삼장법사가 타고 다녔던
백마는 바로 이때 내몽고에서 촬영하면서
구입하였다고 한다.
똑같이 실내에서 촬영한 장면으로 손오공이 있었던
장소 능소전(凌霄殿)과 두솔궁(斗率宫)은
모두 중앙방송국(CCTV)에서 촬영되었고
실외 두번 격투신은 북경십도(北京十渡)과
칠왕무덤(七王坟)에서 촬영하였으며
그중 출연되었던 천수개(哮天犬)는 모두 두마리였다고 한다
이부분에서 야외 신이 좀 많은 편이였다..
그중 손오공이 산에 깔려 있는 거외에는
삼장법사의 신상에 대한 추억도 다뤄야 했기때문에
스텝들은 중국내 5~6곳 지역을 다녀야 했었다..
그중 손오공이 깔려있는 오행산(五行山)은
운남성 석림에서 촬영되었고 삼장법사가 드라마에서
첫 신은 절강성 녕파(宁波)에서 촬영 되었다..
중은(中殷)부인 공을 던지는 장면은
운남정희주(喜洲)에서 촬영 되었고 애기였던
삼장법사를 물에 떠내려보내는 장면은
강소성진강(江苏镇江)에서 촬영되었다
이 회에서 손오공을 구조하는 장면은 여전히
운남 석림에서 촬영 되었고 손오공과 삼장법사 만나고
소백룡(小白龙)을 귀순시키는 장면은 복건성의 무이산(武夷山)에서
촬영되었으며 중간에 서로 격투하는 부분은
옥녀봉(玉女峰)과 구곡계(九曲溪)에서 촬영 되었다
이 회에서 김지(金池)주지스님이 거주했던
사원은 복건용천사(福建涌泉寺)였고
흑곰요괴가 거주했던 동굴은
련강청자산(连江青芝山)이였으며
마침 제작자들 복건성에 도착했을때
주변 동산섬(东山岛)에 화재로 아직 복구안된
사찰이 있어서 양제이(杨洁)감독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껐다..
7.<고로장(高老庄)에서 저팔계를 제자로 받았다>
고로장(高老庄)에서 저팔계를 제자로 받았던 장면을 촬영했던
장소는 웨이팡(潍坊)의 청주(青州)범공정(范公亭)이였고
실내 촬영은 웨이팡(潍坊) 십홀원(十笏园)에서 촬영하였다..
고씨 집안의 따님을 업고 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은 청도로산(青岛崂山)에서 촬영되었으며
저팔계의 운전동(云栈洞)은 항주 서허 령은사(灵隐寺)의
통천동(通天洞)에서 촬영되었다
류사허(流沙河)에서 사오정을 제자로 받는 장면은 모두
귀주성화강(贵州花江)에서 촬영되었고 제자 4명이 모두
합쳐진후 저팔계가 결혼했던 여자와 마주치는
장면은 소주천평산(苏州天平山)과 이원(怡园)에서 촬영되었다
오장관(五庄观)에 관련된 장면은 사천성청성산에서
촬영되었을뿐만 아니라 부근에 손오공이 최초에
푸티조사(菩提祖师)한테서 재능을 배우는
과정을 촬영했던 장소도 함께 있어서 두개 스토리는
모두 한곳에서 촬영된 셈이고.. 인삼과(人参果)나무가
있는 장소는 바로 사천성 성도 문화공원이였다..
서유기에서 가장 재미있던 스토리가
백골정을 세번때리다는 장면이였는데 백골정은 여자귀신 아니면
마귀라고 할가요? 엄청난 능력을 가진 마귀인데
하루 식사거리가 사람피이다.. 마을 사람들 입으로 훅~ 하면
자기 거주하는 동굴로 날아들어오고 훅~ 하면
그 사람 몸속의 피는 모두 백골정의 입으로 들어간다..
서방의 뱀파이어 같기도 하고
서유기에서 나오는 마귀들은 삼장법사의
고기를 먹으면 장생불로한다고 얘기하는데 백골정도
삼장법사 고기를 먹을려고 세번 할머니,
아주머니 등등으로 둔갑하여 삼장법사를 잡을려고
하는데 손오공의 눈치에 벗어나지 못하고
실패하는데 매번 손오공이 둔갑한 백골정을
때려죽일때마다 삼장법사는 손오공을
일반사람을 죽인다고 오해를 하는 손오공을 내쫓는
스토리인데 단독으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도 많이 나온다..
드라마 백골정을 세번때리다에서 나오는 장면은
황페한 산으로 진짜 마귀들이 나올것 같은
그런 황량한 모습이였는데 이 장면은 바로 유명한
장가계에서 촬영되었다.. 80년대 장가계
아직 풍경구로 개발되기전 완전 원시림이였을때였고
백골정이 살고 있었던 동굴은 바로
장가계의 자파월동(自波月洞)이란 곳에서 촬영되었다..
보상국(宝象国)을 촬영했던 장소는 운남 대리(大理)였고
궁전 실내 배경은 곤명의 탄화사(昙花寺)에서 촬영되었으며
저팔계가 화과산(花果山)에 가서 손오공을 모셔오는 장면은
강서성의 루산(庐山)에서 촬영되었다
12, <련화동(莲花洞)에서 보물을 빼앗다>
이 커트신은 전체 드라마에서 가장 쉽게 촬영되었고
장소는 운남성의 석림(石林)이였다..
우계국(乌鸡国)에 관련된 부분은 모두 2개 커트신이 있었고
한 커트신은 양주(扬州)에서 촬영되었고 다른 컨트신은
소주(苏州)망사원(网师园)에서 촬영되었으며 나중에
양제(杨洁)감독은 두곳에서 촬영한 소재를 혼합해서
편집하여 현재의 서유기 버전이 되었다
훙하이얼(红孩儿)과 관련된 부분에서 호산(浩山)은
백두산에서 촬영되었고 손오공이 불에 타는 장면도
백두산에서 촬영되었으며
훙하이얼(红孩儿) 거주하는 동굴은 장춘공원의 넒은 공간에다
쎄트장을 만들어서 촬영되었다
여인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충분히 나타내기 위하여
양제이(杨洁)감독은 모든 장면을 소주와 항주에서 촬영되었고
그중 삼장법사 및 제자 네명이서 배를 타는 장면은
소흥(绍兴)에서 촬여되었고 여인국 왕의 궁전의 실내는
소주의 사자림(狮子林)에서 촬영되었으며 화원에는
노는 장면은 서호에서 촬영되었으며 이별하는 장면은
항주 식물원에서 촬영되었다.
화염산(火焰山)을 경유하는 장면은 경간이 너무 크고
화염산 (火焰山)주변의 황무지와 취운산(翠云山)의
번성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진은 사전에 신쟝투루판사막으로 달려가
가뭄의 모습을 먼저 촬영해놓았고 ,,
또 다시 계림의 칠성암(桂林七星岩)에 가서
부채를 빌리는 장면을 촬영하였다고 한다..
제싸이국(祭赛国) 이 장면은 주로 산서성에서 촬영되었고
그중 운강석굴(云冈石窟) 및 광승사(广胜寺)등이 포함되며
김광사(金光寺)탑내 실내촬영은 북경의 해양국에서 진행되었고
기타 실내촬영은 모두 북경예술학원
운장장에다 쎄트장을 만들어 촬영되었으며
구두요괴(九头怪)를 사살하는 장면은
산동위해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동냥에서부터 동굴들어가고, 거미요귀가 목욕하는 장면들은
모두 구채구에서 촬영되었고 동굴로비등 실내장면도 모두
구채구에서 촬영되었으며 후기 오공요귀가 거주하는
황화관(黄花观)은 관현얼왕묘(灌县二王庙)에서 촬영되었다
금코를 가진 쥐요귀가 나오는 장면에서 굽이 없는 동굴의
실내의 촬영은 연태 연극학교에서 진행되었고
궁전과 요귀가 갇혀있는 수림은 북경의
칠왕무덤(七王坟)과 청릉(清陵)에서 촬영되었다
삼장법사및 제자 네명이 옥화주(玉华洲)로 가는 실와장면은
광동의 불산(佛山)과 관현얼왕묘(灌县二王庙)에서 촬영되었고
그들이 숙박하는 주점은 천주(泉州)의 청정사원(清真寺)에서 촬영되었고
구두원승(九头元圣)의 거주하는 동굴은 광동의 자오칭(肇庆)에서 촬영되었다..
이 장면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스토리가 담겨 있기때문에
모두 세곳에서 촬영되었고 그중은 중국 운남에서 공주가 재난을
당하는 장면과 삼장법사와 결혼하는 장면을 촬영되었으며
다른 장면들은 모두 태국에서 촬영하였다고 한다
<서유기(西游记)>에 마감집에서 불탑과 석가모니상이 있는 불사 장면은
모두 태국의 불사(佛寺)에서 촬영되었고 삼장법사 및 제자 네명이
대뢰음사(大雷音寺)로 들어가는 장면은
운남영황제작공장내에 쎄트장을 만들어 촬영되었으며
그중 마지막 재난이였던 물에 빠지는 장면은
사천성의 도강언(都江堰)에서 촬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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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띵전(丁真)에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의아하기도 하고..
확실이 잘생기긴 했죠..
시원시원한 눈매.. 서구형 같은 얼굴..
광주같은곳에서는 주윤발이나 유덕화 같은 스타들 얼굴로 열광하다가..
그들보다도 더 잘 생긴 캉바티벳인 띵전(丁真) 보니.. 완전 빠지고 말았죠.. ㅎㅎ
사실.. 캉딩거리에 다니면.. 잘 생긴 캉바티벳인 남자들 .. 흔하게 볼수 있어요..
그냥 강한 자외선때문에 얼굴이 까마짭자르..하여.. 훤하게 보이지 않지만..
얼굴이 완전 서구형이고 키고 180이상이니..
거리를 다니면 눈이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ㅋㅋ
이번에는 동티벳 관광국의 국장님이신
류훙(甘孜州文旅局 局长 刘洪) 이 갑작스럽게 온 인터넷을 달굽니다.
류훙 국장님은 저도 본적 있는데..
사실 간즈저우 관광국에 가면 자주 봐서 모르겠는데
오늘 뉴스 보닌깐 확실히 잘 생겼어요..
국장님은 요즘 온라인셀럽으로 뜨고 있는
띵전(丁真)이랑 데리고 광동성 광주 및 동관 등지역에 가서
동티벳 관광홍보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분도 띵전(丁真)의 팬으로 띵전(丁真)의 인기로 ..
동티벳관광 홍보를 진행하는데
뜻밖에 본인이 더 뜨고 말았답니다.
188의 껑충한 키에 오똑한 콧날과 깊은 눈매의 멋에
성숙한 느낌까지 풍기는 유홍의 잘생김은
남자의 호탕까지 겸비해 네티즌들로부터
주윤발(周润发)+김동(靳东)+피상(费翔)+당국강(唐国强-제갈량역을 했던 분)+
존룡(尊龙)+종진도(钟镇涛)의 합체와 같이
너무 잘 생겨서 광동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이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유홍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모습이 담긴 이 동영상은
49세라고 놀라는 네티즌의 모습이 분명 30대 중반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덧글에는:
홍콩배우들보다 더 잘 생겼어요.. 남자다운 모습이 더 멋진것 같습니다.
간즈저우 관광국 국장님 이렇게 잘 생겼는데 간즈저우에 안갈수 없다..
사랑의 도시로 유명한 캉딩.. 한번 가봐야겠다..
국장님이 이렇게 잘생기다니.. 간즈저우는 항상 미남계를 이용하다니..
.......................................
자신의 뜻밖의 인기에 대해 류홍은
멍한 표정으로 나타난 것뿐인데 띵정(丁真)의 팬으로 ..
띵정(丁真)을 인기를 입어.. 동티벳 관광홍보에 본인이
갑자기 온라인셀럽 된데 대해서 의아하기만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인기를 끄는 것에 대해 유홍씨는
"정부 공무원인 자신이 인터넷 홍보를 할 줄은 몰랐는데,
이를 계기로 간쯔주의 관광 홍보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며 "
띵정(丁真)씨처럼 인터넷 홍보를 통해
간쯔 문화와 관광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티벳인들은 지역에 따라 여러갈래 분류로 나뉩니다.
이분들 티벳언어도 서로 다릅니다.
제 개인 생각으로 캉바티벳인들은
다른 티벳인과 조상이 다르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위장티벳인:
라싸, 시가체 지역의 티벳인들 주로 위장티벳인이고
아리, 링즈, 나취 등 지역에도 좀씩 분포되어 있고
이 지역의 티벳인들은 위장티벳어를 사용합니다.
캉바티벳인:
캉바지역에서 거주하는 티벳인으로
전체 티벳탄 지역에서 체구가 가장 큰 티벳인입니다.
그후로 이 지역의 티벳인은 캉바와 안둬로 분류되고
캉바지역은 주로 칭장고원의 동남부의 헝단산맥 지역에 거주하고..
옛날에는 <둬스간>지역이라고도 하였죠..
습관상으로 티벳 단달산동부지역까지, 동부의 사천성 서창인근까지..
티벳 창두지역까지, 운남의 디칭지역까지,,
사천성 간즈저우 및 칭하이성 오수주 및
나취의 동남 지역까지 포함됩니다
안둬티벳인
안둬티벳인의 전통민속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은
아니마지산서북 지역, 감숙성 하서주랑 일대입니다.
그들의 의상은 특별히 화려하고 겨울이면 실크로 된 외투를 입습니다.
안둬티벳인은 몽골과 한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때문에
풍속과 음식에서 많이 섞여 있어요..
구채구 지역과 라싸지역의 티벳인들 안둬티벳인들이고
그들의 언어는 캉딩 지역과 다릅니다.
가융티벳인
사천성 아바주--쓰꾸냥산, 구채구 일부,
간즈저우의 단바 등 지역에 거주합니다.
가융티벳인은 제 생각으로 강족, 한족 등 민족과 함께 거주하면서
서로 혼합되었고 옛날 여인국이였던 동녀국의 후예이죠..
운남의 머쒀인과 마찬가지로 모계사회를 이어왔지만..
최근에는 거의 없어진것 같습니다
가융티벳인은 여인들 너무 예뻐
매년마다 미쓰선발대회를 열게 됩니다.
쿵부티벳인:
캉바지역과 위장티벳지역 사이 링즈 지역에서 거주하고
여기에는 뤄파인과 문파인도 포함됩니다.
이 지녁 모두 쿵부지역으로 쿵바챵다 및 링즈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티벳인들 쿵부티벳인의 문화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중점으로 티벳인중 장동건과 같이
멋진 남자들 많다는 캉바 남자들 알아보겠습니다.
캉바는 티벳인중 체구가 가장 우람지고
성격도 호탈하고 의리도 깊고 용맹하기로 유명하며
특히 남자들은 껑충하고 우람진 체구로 캉바맨으로 유명하고
캉바마을에서 전문으로 매년 미스터캉바맨 선발대회를 합니다.
용맹한 캉바인들은 고향을 무지 사랑하고 아끼고
티벳으로 침략했던 영국군과 싸울때 캉바인 남자들 나서서.. 물리쳤다고 합니다.
캉바티베신들은 주로 동티벳 야쟝을 중심으로 주변지역과
티벳 시가체 .. 칭하이성 위쑤 등 지역에 거주합니다.
누군가 세계상에 가장 멋진 남자를 꼽으라면
바로 캉바맨이고 다음으로 동일 남자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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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36년 알렉산다 대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동족으로 정벌 나갔고.
짧은 4년동안 알렉산대대왕은 시리아, 이집트 및 올페르시아를 먹어버리고
인도강을 건너 코끼리 군대를 거느리고 온 버뤄스군대를 전멸하였다고 합니다.
그후로 황하유역에서 서쪽으로 밀려 나갔고
인도북부 지역에 한갈래 오리지날 시리아인이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시리아 인들은 세부락으로 나뉘였고
한 부락은 희말라야산맥을 넘어 지금 캉바지역과 시가체 지역에 머물었죠..
때문에 캉바티벳인들은 다른 티벳인들과 많이 다르고 서양인의 모습이 많이 느껴지고
그분들은 시리아쪽의 후예들이라고 생각됩니다.
본인을 알렉산다대왕으로 자칭하는 히틀러는
본인의 게르만인외 바로 캉바인들이
가장 우수한 인종이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후로 히틀러는 기발한 생각으로 바로 군대를
희말라야로 보내 오리지날 아리안족의 후손을 찾거나
커스미얼더미나뤄인과 캉바인중에 가장 잘 생기고 우람진 남자를 뽑아서
독일로 데리고가서는 독일의 금발 아리온족여자와 결혼시켜
그 후손으로 만든 군대는 파쇼가
전세계를 통치할수 있는 필요성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시행했다고도 합니다
20세기때 F.D elisle 과 Mornt 및 W.Turner 세 학자는 일부러..
티베트로 와서..티벳인의 두골을 연구한 결과
티벳인은 모두 두가지 분류로 되어 있고 A형과 B형으로 나눴다고 하고..
A형은 <승려형>으로 온순하고..
스님쪽으로 많이 출가하게 되고
B형은 <무사형> 혹은 <캉바형>으로 용맹한
모습이였고 오늘의 헝산단맥 지역은
B형의 <캉바인>의 주거지입니다.
2003년 사천성과 운남성의 티벳트 지역에서
공동으로 캉바 예술절을 주최하였고
야쟝 서쪽 어뤄 지역에서 온
캉바 남자들은 우람진고 웅장하고
껑충한 체구의 용맹한 모습은 모두 입을 떡 벌어지게 하고..
후에는 간즈저우 장족 자치주에서
이 마을을 <캉바맨 마을>이라고 명명 하였습니다.
캉바한즈 맨 마을로 지정된 이 마을--서어뤄향은
야쟝에서 60키로 정도 떨어진곳에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갖고 있고 이곳에서 야라설산과 공가설산이 보입니다.
이 마을에 들어가면.. 우람진 체구인 캉바 남자들 많이 보게 되는데..
용맹한 마을로 온듯 싶습니다.
마을의 남자들은 하나 같이 180 이상 신장에
곰 같은 등짝과 호랑이 같은 어깨를 갖고 있고..
마을의 남자들은 머리를 땋는 습관이 남아 있어서
긴긴 머리를 따서는 머리위에 돌리고 위에는 상아, 산호, 금은, 보석 같은걸로..
꾸미거나 .. 그냥 보통 날에는 빨간 천을
머리와 함께 따서는 머리에 둘둘 감고 모자를 쓰고
말을 타는 모습을 보면 진짝 멋집니다.
이곳에 와서는 멋진 풍경도 좋지만.. 이분들을 보는것도..
눈이 너무 즐거운것 같습니다.^^
총적으로 .. 캉바인들은 시리아 후손인것 같습니다.
운남 텅충(腾冲)에서 루이리(瑞丽)를 경유하여.
계속 가게 되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기적이라 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 마을이 바로 중·미얀마 국경의 '한채(一寨) 양국'입니다.
<한마을 두 나라>는 윈난성 루이리(瑞丽)시
교외 11킬로미터 지점의 중미얀마 국경선에 위치하고 있고
원래는 평범한 다이족 마을이었는데
1960년 중국과 미얀마와의 국경선의 결정에 따라
이 마을은 두 부분으로 갈라졌습니다.
중국쪽에 있는 부분은 은정촌(银井村)이고
미얀마쪽에 있는 부분은 망수촌(芒秀村) 이라고 합니다.
국경은 엄연이 갈라졌지만 대대손손 이곳에서
생활하는 촌민들은 개의치 않았고
가뜩이나 같은 언어와 생활 습관은 국경 때문에
영향을 받거나 제한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오래 흐름에 따라 이 마을은 두 나라를 가로지르는
문화 관광지가 된 이 마을은
중미얀마 우호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항상 관광객들은 두 발을 국경선 한쪽에 두고
사진을 찍으며 여러 지역을 넘나드는
느낌을 기록하곤 합니다.
<한마을양국>에서 이런 특별한 느낌은 이뿐만이 아니며
마을 안에서, 관광객들은 국경선에서 그네를 타면서
그네로 몸을 날려 두나라를 넘나드는
독특한 체험을 하실수 있고
두나라를 가로지른 다리위로 워킹도 해보시고
두나라에서 함께 사용하는
우물의 물을 마셔도 보는 등등의
체험을 해보시게 됩니다.
가장 특별한거는 마을에 있는 탑이
두나라에 소속되어 있고
올라가서 구경도 할수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마을의 애들인데..
미얀마 쪽 아이들은 중국 내
은정변방초등학교에 다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세관을 통해
국경을 넘나들고 장담하건대
그들은 전 세계에서 국경을
가장 많이 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국경선에 위치한 집에서 생활하는 분들은
잠을 잘때 머리는 미얀마쪽에 있고
몸은 중국쪽에 있는거 아닐가?
생각만 해도 흥미롭습니다.
1960년에 국경을 정하기전에는
은정촌(银井村)과 망수촌(芒秀村)는
그냥 한 다이족마을이고
당시 두 나라의 경계선은 말뚝 외에
물골·두렁·대울타리·마을길로 경계하였습니다.
하지만 두나라 사이에 엄격한
장벽이나 장애물은 없구요
마을사람들 국경선을 넘어
농사일을 하는 일도 일상입니다.
이것은 단지 "한마을 두개 나라"만의 상황이 아니고
14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루이리(瑞丽)의 국경선 전체에 있는
많은 마을들 모두
<너 중에 내가 있고, 나 중에 네가 있다.> 고 합니다.
작은 도시 뤼이리(瑞丽)는
삼면이 미얀마와 붙허 있고
여기에는 두곳 국가급 입국장과
한곳 성급 입구장이 있습니다.
루이리()는 미얀마의 무제(木姐),
남칸(南坎)과 삼각형의 모양으로 서로 위치하여 있어
<하마을에 두개 나라, 3개 도시>로
독특한 변경지역 볼거리가 되어 있습니다.
동북에 있을때는 진초(묵은식초-陈醋) 먹어본적 없었는데
남방에서 주로 진초(묵은식초-陈醋)를 먹더군요..
남방에서 몇십년 생활하면서
저도 진초(묵은식초-陈醋)에 적응이 되고..
다양한 요리에 넣기도 하고
훠궈를 먹을때 가끔 쏘스로 찍어먹군 합니다.
매운 훠궈물에 익힌 식재료를
진초(묵은식초-陈醋)에 찍어먹으면 덜 매워지고
묵은 신맛이 은근히 중독 되더군요
요즘은 백두산에 와서는 이곳 현지에서는
진초(묵은식초-陈醋)를 남방만큼 사용안되는것 같습니다
저의 집에서도 시어머니 주로 한국식초,
연변에서 나오는 강초(70도정도)를 주로 사용하고 있고
시어머니는 진초(묵은식초-陈醋)
냄새를 맡아도 멀리 하시더군요..
<저는 그냥 마셔도 좋던데.. ㅎㅎ
누군가 아침 식전 진초(묵은식초-陈醋)를
공복에 한술 먹으면 다이어트 된다고 해서 10일동안
그렇게 마셨는데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맛있어서 더 마셨어요.. ㅋㅋ>
진초(묵은식초-陈醋)가
천여년의 역사를 가진 유명한 산지가 있어요..
그중 TOP4 를 알아 보겠습니다.
속담에 술이 세번 순배 해야 하고,
요리도 다섯 가지 맛을 봐야 평가가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요리에는 다섯가지 기본맛이 있으며
바로 신맛,단맛,쓴맛, 매운맛, 짠맛 입니다.
하여 우리 인체 미각도 이 다섯가지 기초맛만 느낄수 있고..
이 다서서가지맛을 기초로 하여
다양한 주방의 조미료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신맛>을 얘기 해볼겁니다.
일상생활에서 신맛 나는 요리를 만들려면
조미료로 당연히 식초를 선택하게 됩니다.
<초 醋>란 한자만 봐도 우리는
저도 모르게 시큼한 맛이 입안에 감도는것 같습니다.
역사자료에 따르면 중국에서 식초를 만든 역사는 3000여년정도 되고
그당시 사람들은 식초를 <초-醋>라고 안불렀고
<추-酢> 혹은 <씨-醯>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식초계에서는 아직도 4대 명초라는 말이 있고
그것들은 바로: 산시로진초(山西老陈醋),
진쟝향초(镇江香醋), 복건유웅춘 로초(福建永春老醋),
랑중보닝초(阆中保宁醋) 이렇게 있습니다.
그럼 유명한 TOP4 식초를 알아볼가요?
¶ 01 산시로진초(山西老陈醋)
산시로진초(山西老陈醋)는
예전부터 "천하제일초"라는 평판이 있었고
산시성(山西省)의 특산물중의 하나이고..
중국 내셔널 지오그래픽이기도 한 제품입니다.
산시로진초(山西老陈醋)는
우수한 품질의 수수·보리·완두콩 등 오곡을 원료로 하여,
찜(蒸)·발효·훈(熏)·림(淋)·말림(晒) 등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
오랫동안 놓아두면 둘수록 향기가 진해집니다.
다른 보통 식초에 비교할경우
산시로진초(山西老陈醋)에 들어간 원료들 풍부하고
당화발효제로 양질의 누룩(大曲)을 사용하였으며
누룩(大曲)을 곡식대신으로 사용하였으며
우수한품질의 누룩(大曲)을 사용한것이 특점입니다.
산시로진초(山西老陈醋)는 양조 과정에서
첨가제가 필요 없는 '훈제'라는 특수 공법을 사용하는걸로
풍부한 식감이 생기고 동시에 묵은 식초 대신
새 식초를 새것처럼 오래 숙성시켜
여러 해 동안 양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시로진초(山西老陈醋)는 맛이 강렬하고,
맛이 길게 남으며 , 고소하고, 부드러우며,
여름을 지나도 곰팡이가 슬지 않고,
겨울에 내다놔도 얼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 02 진쟝향초(镇江香醋)
진쟝향초(镇江香醋)는 강소성
진쟝시에 특산물로 유명하고
중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제품이기도 하며
중국 의약대전에서 일찍이 진쟝향초(镇江香醋)를
<식초의 산지는 절강 강소,항주, 소흥이 최고이고
그중에서도 강소성의 진쟝이 최고임>로 기록하였습니다.
진쟝향초(镇江香醋)는 진쟝시(镇江市) 지역에서
생산되는 찹살을 주요원료로 하고..
진쟝시(镇江市)지역의 물을 수원(水源)으로 사용하며
보리누룩을 당화 발효제로 하여 양조하였습니다.
식초 양조과정에서 진쟝향초(镇江香醋)는
<고태 부동한 층으로 발효(固态分层发酵)>하는
방식을 사용하였고
이러한 제작방식은
초산균의 번식에 더욱 유리해진다고 합니다.
진쟝향초(镇江香醋)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그 이름 안에 있는 '香'자입니다...
다른 식초와 비교할때 진쟝향초(镇江香醋)에는
특별한 향기가 있습니다.
맛을 보면 은은한 단맛이 나기도 하고..
다시 말하면 신맛중에 약간의 단맛이 느껴지고
특히 양념장이 제격입니다.
¶ 03 복건융춘로초(福建永春老醋)
융춘로추(永春老醋)는 복건성 융춘현(永春县)의 특산이고
중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제품이기도 하며
1000여 년 전 북송시대부터 융춘현(永春县)들은
식초를 만들면서 독특한 식초를 빚기 시작했습니다.
융춘로추-식초(永春老醋)는 찹쌀,
홍곡미(红曲米), 깨 등을 주요원료로 하며
홍곡당화알코올발효, 액상초산발효 등의 공법으로 제작됩니다
다른 식초와 비교하면 융춘로추-식초(永春老醋)는
색갈이 좀 짙은 갈색이 나고
소금, 방부제 등을 첨가하지 않고 순수하고 고소하며 상쾌한 맛이 특징입니다.
¶ 04 랑중(红曲米)보녕식초(保宁醋)
랑중보녕,, 사천성 랑중(阆中)시
보녕진(保宁镇)이란 지역이름이고
보녕식초(保宁醋)는 이곳의 특산입니다.
보녕식초(保宁醋)는 1000여년의 역사가 있고
사천성에서는 이런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사천요리에 보녕식초(保宁醋)가 없으면 손님이 끊긴다>
랑중보녕식초(阆中保宁醋)는
밀기울, 밀, 쌀, 찹쌀을 원료로 하고,
모르핀, 맥아, 당귀 등의 한약재등을 원재료로
글루텐 식초 등 전통 공법으로 42회 공정을 거쳐 양조되며
적갈색을 띄어 신맛이 부드러우며,
달콤하고 진한 맛이 특징입니다
사람은 장생불로할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긴긴 역사를 거친 그들만의 특별한 발자취는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긴긴 5천여년 역사속에서 문화 계승 발전한 오랜 세월 동안
무수한 옛 사람들이 그들의 휘황찬란한 한 장면을 남겼다
예를 들면 자금성, 진시황릉,
그리고 세계에서 고대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만리장성 등등 있다..
그런데 왜 만리장성은 천년만년 우뚝 설 수 있는지 엄청 궁금하였다..
현대 건물도 어느정도 세월 지나면 사
용못할정도록 허름한데..
만리장성은 몇천년동안 그렇게 끄떡없을가?
이 문제 연관되는 해답은 비교적 복잡하고 이 문제를 답하기전에
우선 만리장성의 발전과정을 먼저 얘기해볼라고 한다..
만리장상은 고대의 군사 방어 공사이고 단순히 고립된 성벽이 아니며
성벽을 주체로 하여 방대한 양의 성,
울타리, 정자, 표지를 결합한 방어체계가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상 줄곧 장성이라고 부르지는 않았고
부동한 시기, 부동한 지역에 따라 그 용어는 달랐으며
춘추전국(春秋全國)에서 시작된 '장성(長城)'이라는 용어가 가장 통용된다.
그것은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공사량이 많은 고대 방어 공사로서,
가장 먼저 서주(西周)로 부터 시작하였다.
진시황 이후 만리장성은 거의 불문율이 되어,
중원 지역을 통치하던 왕조는 모두 꼭 한차례 큰 공사를 하였다..
이러한 공사는 춘추전국(春秋全國)시기부터 청나라시기까지 이어왔고
2천여년의 시간을 걸쳐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만리장성이 결코 진시황 혼자서 쌓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지만
만리장성 하면 진시황을 떠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것과 연관된다..
그전에는 이 큰 대륙은 쪼그만한 나라로 분산되었고
각 제후들이 대지를 차지하고 왕이 되었는데,
제초연조위한(齐楚燕赵魏韩) 이것들은 모두 대제후국이며,
또 중산(中山) 등 작은 제후국들이 있었다..
춘추 시대에는 제경전의 크고 작은 제후국들만 보았을 뿐,
다른 하나는 제후국이 백칠십여 개라고 하니,
어느 것이 맞든 이 수가 너무 많았다.
그들은 모두 장성을 건설하였지만
각자 자기 영역내 장성만 건설하였고
자의 수비에 따라 필요한 국경을 건설하였다..
이때 만리장성의 특징은 동남서북 각각 다르고,
길이도 비교적 짧아, 천리장성이라 할 수밖에 없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후
제국의 안전을 유지하고 보호하기위하여
만리장성을 수건(修建)하기 시작하였고
즉, 전의 벌크장성을 한군데로 수리하고,
파손된 것을 다시 수리하며,
중간에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는 것이다
최종 서쪽 린토오(临洮)(지금 감숙성니샌尼县 ),
동쪽 요동(辽东)(지금 요녕성)까지
구불구불한 만리장성이 완성되었다..
후대에는 이 만리장성을 보수하였거나,
그 위에 필요에 따라 별도로 수리하였다.
2,000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우뚝 선 장성을 볼 수 있는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앞에서 얘기하다싶이
각조대를 내려오면서 수시로 수리하였고
필경 만리장성은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튼튼하더라도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2000여년동안 자주 보수를 하는데
왜 어떤곳은 자꾸 무너질가요?
이건 극히 중요한 원인인데..
그중 다른 원인은 바로 진시황의 역사 재료에서 보다싶이
그때당시 철근 물론 시멘트가 없을때는
사람의 힘으로 의거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옛날사람들도 방법이 있었다..
그 방법이 바로 찹쌀이였다..
삶은 찹쌀에 모래와 자갈을 혼합하면
끈적임과 효과가 매우 좋았고..
물론 찹쌀만 사용하는거 아니였다고 한다..
고대인들한테 찹쌀은 엄청 귀중한 먹거리였기때문에
여기에 다른재료들 붉은 흙, 석회, 사석 등의
재료도 넣는데 찹쌀은 소량일 뿐이다..
그리고 만리장성뿐만 아니라
고대 많은 건축물들은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었고..
효과도 엄청 좋았다고 하였으며
이 방법 외에도 현지 재료를 이용하는 원칙으로,
적재적소(就地取材)를 활용하는 곳이 있었다..
이로 인해 많은 구조 방법, 조각석,
벽돌 혼합 등 구조방법이 생겨났고
사막에는 홍류 가지(红柳枝条),
갈대와 모래 알갱이가 층층이 깔린 구조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명나라시기에 와서는 생산능력이 발전되면서
벽돌제품은 더 이상 사치한 건축자재가 아니였기때문에
명나라시기에 와서 수건한 장성의 많은 곳은 거대한벽돌을 이용하였다..
옛사람의 지혜는 참으로 사람을 탄복하게 하며,
많은 현대설계인들도 이루기 어렵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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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청두에서 15년정도 거주하면서..
먹거리가 풍부한 청두에서 먹는걸 좋아하는 저로서는 천국같은 곳이죠..
특히 매운맛을 즐기기때문에.. 청두에서 크고작은 식당 들어가도..
모두 맛있는것 같습니다.
쓰촨훠궈나 쓰촨요리는 청두나 충칭에서 먹어야 그 맛에 폭~ 빠지는데
다른 지역에서 먹는 훠궈 사천요리는 뭔가 많이 부족한듯하고.. 거부하게 되더군요..
청두하면... 뭐니뭐니 해도.. 훠궈가 대표적이죠..
많이 먹을때는 3-4일에 한번씩 먹었던것 같어요..
德庄,小天鹅,重庆老灶,吴铭火锅 등등
사실 청두 본토 훠궈보다 충칭에서 들어온 훠궈가 더 맛있어요..
충칭훠궈가 더 찐하고 더 맵고 산초도 더 많고.. 소기름을 더 선호 합니다.
청두거리를 다니면 가장 많은 가게가 훠궈, 촨촨샹, 차집.
오늘은 청두에서 먹었던 다양한 훠궈를 올려볼려구요..
그냥 매운국물에 넣어 익혀먹는 훠궈도 있고.. 다른 종류의 훠궈도 있고.. 다 맛있어요..
쓰촨의 훠궈는 충칭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조천문부두에는 배의 화물을 운반하는 많은 근로자들.. 있구요..
그분들은 엄청 가난하여.. 배에서.. 얻어온 먹거리를 큰 가마에 모두 넣어서 끓여서 먹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충칭은 날씨가 엄청 덥고 습하여.. 맵고, 얼얼한 산초로 몸속의 습기를 제거해줍니다.
그래서인지 충칭에서 먹는 훠궈 혹은 청두에서도 충칭브랜드 훠궈집을 많이 찾아가군합니다.
현지인들은 훠궈에 흔히 넣는 식재료들은 오리곱창, 닭똥집, 천엽, 돼지뇌, 죽순, 연근, 돼지신장등등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이러한 식재료들 사천훠궈에 궁합이 맞는듯합니다. 맛있어요.. ^^
말 그대로 국물이 없는 훠궈입니다.
다양한 메뉴가 있고 본인이 즐겨먹는걸로 선택하게 되는데 저는 닭고기가 맛있고
오리주둥이 혹은 오리혀로 만든 깐궈가 와~ 쫀듯쫀듯하고.. 너무 맛있어요
닭고기로 만은 라즈지(辣子鸡) 깡 말라 보이지만 고기는 엄청 쫀듯하고
닭고기의 고소함과 쓰촨의 고추 및 산초가 너무 잘 어울려
닭고기의 고소함을 더 업그레드 해주고. 맵고 얼얼하지만 자꾸 땡깁니다.
그외 갈비도 괜찮고 생선으로 만든 깐궈도 맛있고..
그냥 야채로만 만든 깐궈도 맛있어요..
특히 연근과 죽순은.. 훠궈든 깐궈든 너무 어울립니다.
钵钵鸡(버버지)는 쓰촨의 유명한 전통먹거리이고 사천요리계에 속합니다.
청나라시기부터 전해내려온 백여년이 된 오랜 전통먹거리죠..
도자기그릇에 쓰촨만의 마라향의 국물에 뼈없는 닭고기를 위주로 하는 식재료를
대나무꼬치에 꽂아 익혀서 나옵니다.
钵钵鸡(버버지)버버는--도자기란 뜻입니다.
전통 钵钵鸡(버버지)담는 도자기그릇은 외관이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된 무늬가 되어 있고
쓰촨고유의 마라맛이 위주입니다.
촨촨샹(串串香)은 사천성 성도에서 유래되었고 쓰촨지역의 유명한 전통 먹거립니다.
촨촨샹(串串香)은 훠궈의 또 다른 먹는 형식으로 현지에서는 미니훠궈라고도 하죠..
촨촨샹(串串香)의 뜻은 대나무꼬치에 식재료를 꽂았다고 하여.. 촨촨샹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걸 펄펄끓는 훠궈국물에 넣어서 익혀서 먹습니다.
촨촨샹(串串香)의 결재는 대나무꼬치개수를 세는데 예전에는 한꼬치 보통 10전정도 해요..
엄청 먹어도.. 무지 저렴하게 나와요.. 저희 4명인가 엄청 먹었는데 50원정도로 나왔어요..
요즘은 가격이 올랐을것 같습니다.
대나무꼬치에 보통 고기든 야채든 그냥 한입에 들어갈수 있을정도 크기로 꽂습니다.
고기는 조금 비싸기때문에 대나무꼬치는 두가지 혹은 세가지로 꼽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선택하면 대나무 꼬치 두개--세개 되기때문에 20전-30전으로 나오죠..
북방에서 흔히 보는 <마라탕>이 촨촨샹(串串香)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쓰촨에는 <마라탕>이란 메뉴가 없어요..
성도에 있을때 하루 일하고 동료들과 점심먹으로 주변 식당에 가면..
현지친구들.. 冒菜(모오차이)를 자주 주문해서 먹습니다.
훠궈먹고 싶을때 冒菜(모오차이)는 작는 미니 훠궈로.. 한끼 식사로 맞춤합니다.
밥에 冒菜(모오차이)한그룻으로 짜릿한 매운맛과 산초맛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입맛을 댕겨줘요..
冒菜(모오차이)는 청두 훠궈 종류로.. 원하는 식재료로..
작은 훠궈처럼 만들어줍니다..여기에 보통 콩나물, 두부, 연근,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천엽
등이 들어가고.. 선지를 많이 선택합니다.
이러한 식재료를 대나무로 만든 조리로 펄펄 끓는 큰 솥에 넣어서 익혀줍니다.
건져서는 위에 사천고추, 산초, 고수등을 뿌려줍니다.
비싸지 않고.. 혼자 한끼식사로 맞춤합니다.
엄청 큰 가마에 국을 끓이는데 다양한 약재와 사천식양념을 넣어서 가까이 가도.. 엄청 댕깁니다.
冷锅鱼(렁궈위)한자 그대로.. 식은 국물입니다. 다른 훠궈에 비해서 冷锅鱼(렁궈위)는
많이 안먹었어요.. 근데.. 冷锅鱼(렁궈위)도 엄청 맛있어요..
冷锅鱼(렁궈위)는 맛, 색상, 향이 완벽한 전통요리이고 쓰촨 동파지역에서 유래되었고
유명한 시인<소동파>께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성도, 충칭 지역에서 많이 알려지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왔고..
성도에서도 冷锅鱼(렁궈위) 가게를 많이 있어요..
사실은 성도에는 冷锅 형식으로 된 메뉴가 일찍이 있었어요.. <훠궈닭고기>, <훠궈토끼고기>등등..
조리방법은 먼저 고압소스로 고기를 익힌후에 다시 철솥에 담아서..
직접 손님밥상에 올립니다. 손님들은 솥에 내용물을 거의 먹은후
다시 부탄가스 같은걸로 가열후 다른 식재료(죽순, 연근, 돼지 소 고기등)을 추가로 주문하여
넣어서 끓여 먹습니다.
이렇게 먹는 방법은 기존의 훠궈 같죠..
근데 왜 冷锅鱼(렁궈위)라고 할가요.. 손님한테 올릴때 불 없이 올렸다고 하여..
이러한 형식으로 된 훠궈를 冷锅鱼(렁궈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로 의빙의 片片鱼(고기쪼각)요리가 성도에 들어온후.. 冷锅鱼(렁궈위)의 이름이
유명해졌고 성도 곳곳에서 冷锅鱼(렁궈위)가게가 우후죽수처럼 생겼다고 합니다.
근데 성도에 뜨거운 국물 훠궈랑 있는데 왜 冷锅鱼(렁궈위)에 반했을가요?
한 전문가 얘기로 생선은 영양가치가 높고 지방이 적기때문에..
현지인들은 생선은 남자들의 주유소, 여자들의 미용소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생선을 엄청 좋아하는데 펄펄끓는 훠궈에 넣어서 익혀 먹으면
불강도를 조절하기 어려워 생선이 쉽게 부서지는 원인때문에
冷锅鱼(렁궈위)처럼 식당쓰푸들 고기를 먼저 조리를 해주기때문에 (민물생선이 좀 비린맛이 강한데..
쓰푸는 생선을 먼저 불에 구워요. 그리고 다시 조리를 해주는데 비린맛이 없어지고
생선의 고소한맛이 강해져서 맛있어요) 손님들은 갖다주면 그냥 직접 먹으면 됩니다.
편리하고 생선고기가 엄청 부드럽고 맛있어요..
내용물을 다 먹고 나서 추가로 주문하면 가열하여.. 다른 식재료를 더 넣어서 먹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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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샤땜 붕괴? (0) | 2020.07.29 |
동티벳 간즈현--라싸 직항노선을 개설 (0) | 2020.07.01 |
저둬산--사천성간즈저우에 위치하였고 패스는 해발 4298메터로.. 캉바지역의 첫번째 관문입니다.
이곳은 자고로 지리적 중요한 분계선으로 서쪽 고원이 시작되는곳이고
야룽쟝의 오른쪽은 고산협곡지역이고 대도하 지역에는 다양한 소수민족이 집결한곳이죠.
티벳인들도 저둬산을 분계선으로 동쪽지역은 가융티벳인들 거주하고
저둬산에서부터 서쪽으로 완전 오리지널 티벳탄 지역이죠..
<저둬折多>티벳고원의 동쪽변두리로.. 티벳어이고 <구불구불>하다는 의미로
줘둬산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둬산은 차마고도의 필수 경유지입니다.
야안의 차는 캉딩에서 무역을 진행한후..
저둬산을 경유하여.. 티벳탄지역으로 퍼집니다.
캉딩 신두교 지역에 가면 무야<木雅>티벳이란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무야<木雅>에 관련해서는 티벳 역사에서 토번역사나 <게사르서사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무야<木雅> 옛날 이름은 <미약弭药>라고 했었고.. 이는 티벳탄속에 역사가 오래된 부락일뿐만아니라
한 지역이름이기도 합니다.
무야<木雅>티벳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수수께끼이지만 현재 학술계에서 많이 알려진 설법은
고대 <당항인党项人>과 본지방 <토번주민>과 융합되어 탄생된 후예라고 합니다.
무야<木雅>티벳인의 가장 큰 특점은 언어인데 이 지역의 티벳인들은 <무야어>를 사용함으로
라싸지역도 다릅니다 .. <무야어>는 또 동부지역방언과 서쪽지역 방언으로 나뉘여집니다.
동쪽지역방언을 사용하는 티벳인은 구룡현의 탕고향, 캉딩현지역의 싸더향, 류파향 등 지역이고
이 지역의 무야<木雅>티벳인의 언어는 한족과 이족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있고
서부지역방언을 사용하는 티벳인은 라싸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무야성지풍경구<木雅圣地景区>는 캉딩 저둬산 서쪽비탈 <무야씬캉木雅辛康>지역이고
동티벳<간즈저우> 지역 첫번째 민속풍정과 자연풍광이 결합된 관광명소이고..
첫번째로 <木雅>티벳인을 테마로 한 테마풍경구역입니다.
이 지역에는 신두교, 캉딩, 저둬산, 구룡오쉬해, 공가산 트래킹 등등 많은 유명한 코스들 있고
성도에서 가까워 드라이버로, 아웃도어로, 짧은 여행으로 많이 선택받는곳이죠..
바로 저둬산 무야풍경구지역에다 스키장을 만들었고 새해에 오픈한다고 합니다.
저둬산에서 스키타면 금방 신두교에 도착하겠네요.. ㅎㅎ
전체 동티벳 지역에서 첫번째 스키장이라고 합니다.
초급스키장은 경사각도 8도 되는곳에 위치하였고 폭은 20메터 정도됨으로
스키탈때면 속도가 빠르지 않아 처음 스키를 접촉하는분들한테도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무야성지 스키장의 우월점은
1. 겨울 강설량이 많고 (근데 백두산만큼은 아닌것 같슴다,,^^),, 설기는 5개월정도 되고
2. 인공제설하는데 기온이 마춤하다고 하고
3. 기후가 건조하고 눈의 질이 좋다고 하네요..
스키장외에 따로 즐길수 있는 항목도 많다고 합니다.
초급스키어를 위한 모탄도 있고 스노모빌, 튜브 등등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근데 친구가 보낸 사진보면.. 백두산의 설원에 비하면 ..설량이 너무 적어보입니다.
해발 4천메터 되는곳에서 타는 스키 어떤 느낌일가요?
규모는 많이 작아 보여요..
슬로프가 많이 않아 프로스키어들한테는 아마 실망이 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위치: 무야성지스키장은 캉딩시(캉딩 언제 시로 되었군요^^)신두교 무야성지 풍경구내 위치하였고..
드라이버로 가실때는 네비게이션에서 <木雅圣地>를 검색하면 됩니다.
요즘은 고속도로가 캉딩시까지 연결되어 있어.. 성도에서 이곳 무야성지풍경구까지
차로 약 4시간정도면 충분합니다.
하~ 많이 좋아졌네요.. 예전에는 성도에서 캉딩까지 8시간정도,,캉딩에서 --무야(신두교)까지 3시간은 가졌던것 같은데
현재 캉딩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신두교까지 4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여기서..주목으로 성도--캉딩까지 고속도로는 캉딩까지 완공되었고.. 이제 곧 신두교까지 뻣는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고속도로는 라싸까지 연결될것 같습니다. 몇년 걸릴지 몰라도..
그러면 성도-라싸 차로 2-3일면 되겠어요..
신두교 지역은 글도 옛날이 좋은것 같습니다.
재작년에 갔을때 많이 변화가 되었고.. 숙소도 너무 많이 생기고..
순수했던 신두교가 없어져서.. 아쉬웠어요..
요즘.. 신두교 지역은 아예 대중적인 명소로 변화되는것 같고..
자연풍광과 어울리지 않은 인공시설을 많이 만들어놓은것 같아서.. 약간 좀 아쉽습니다.
저둬산, 신두교,, 동티벳에서 어디를 가든.. 필수 경유지역에서 진짜 많이 다녀왔고
익숙한 곳이여서 매번 가면,,친근함이 느껴지는데
재작년에 신두교에 갔을때 약간 낯설어 졌어요
근데 도로와 숙소는 너무 좋아져서.. 많이 편안했어요..
예전에는 매번 신두교에 가면.. 그때는 좋은 숙소들 없어요..
춥고.. 쉽게 정전되고.. 로비는 완전 냉동실 같고..
신두교는 해발 3000메터 넘어서 한여름이여도 밤이면 꽤 추워요..
9월넘어가면 더 춥고..
그때 딱 한집이.. 침대마다 전기장판을 깔아줘서.. 따뜻하게 잘수 있어 좋았죠..
재작년에 갔을때.. 숙박했던 호텔은 전에 자주 다녔던 숙소인데..
지금은 완전 4성급 정도로 업그레드 되었고.. 방안이 봄처럼 너무 따뜻하고 좋더군요..
반면 마을은 숙소가 너무 많이 들어서고.. 사람들도 바글바글..
시끌벌끌해서.. 아쉬운마음이 많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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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벳을 다니면서 <샹그릴라>라는 이름을 많이 듣게 된다..
샹그릴라에 관련해서.. 성도 친구 <러러>란 친구를 통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친구 <러러>는 초기에 <신체육>이란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각종 유명기업과 함께 테마활동을 많이 진행하였었다..
한번은 캠핑카로 동티벳 횡단코스답사를 진행할 예정인데..
그분과 졸라서.. 동행을 하게 되었다..
성도에서 출발하여--탠쵄--캉딩--야쟝--또오청--더룽---중댄--리쟝 도착하였다..
이번투어로.. 동티벳의 많은 친구들 알게 되었고..
금후로 동티벳 여행 행사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리쟝에 도착후.. 며칠 머물다가 다시 판즈화, 구룡, 신두교, 단바 등지역을 경유하여..
15일정도 여정으로 답자를 마쳤다..
리쟝에서 <러러> 따라서 <뤄커(Joseph Charles Francis Rock)>박물관에 갔었는데..
처음으로 이분의 사적을 알게 되었다..
전에 <러러>는 <뤄커(Joseph Charles Francis Rock)의 발자취를 따라>라는 컨셉으로 무리에서 야띵으로 향하는 트래킹 행사를 했었는데 중앙방송국<CCTV>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송나갔다..
뤄커(Joseph Charles Francis Rock) 는 미국지리학자이고..
1920년정도에 운남 리쟝에 왔고.. 리쟝에서 오래 머물면서..
이 지역을 소개한 사진과 문장을 <미국지리잡지>에 싫어 많은 미국사람들.. 리쟝에 대해서 궁금심이 많아졌다..
리쟝에 있는 동안.. 주변분들한테 야딩에 관련하여 알게 되었고.. 어렵게어렵게..
무리에서 걸어서 야딩을 다녀와서.. 환상적인 야딩의 풍광사진과 소개글을 <미국지리잡지>에 싫은후
미국을 발칵 뒤집었다고 한다..
그때당시는 세계 곡곡 전쟁터인데.. 꿈속같은 환상적인 야딩의 풍경이 그야말로 세외도원이였다.
<제임스힐틴>이란분께서 이 여행기를 토대로 <잃어버린 지평선>이란 소설을 내놓았고..
영화로도 상영되면서 <샹그릴라>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본인의 해석으로 <샹그리라>는 서쪽 창두, 북쪽 더거 간즈.. 남쪽 리쟝, 동쪽 단바지역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하고
<샹그릴라>는 샹청의 <샹바라>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샹바라> 현지 티벳친구들의 해석으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고 한다..
샹바라는 정확한 어느 지역을 뜻하는거 아니고.. 그기에 대한 해석은 ..
전에 리탕 <창칭춘커얼스 사원>의 활불님의 해석으로 잘 알게 되었다..
<샹그릴라>관련하여..답사를 하게 되었고..
리탕을 들리면서.. 마침.. 금방 집에 오신 <활불>님을 만나게 되었다..
<활불>님은 티벳탄의 살아있는 부처이고 일년사계절.. 집에 계시는 날자가 별로 없다고 한다..
마침 저희가 리탕에 왔을때. 활불님이.. 금방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다 함께 <활불>님의 댁으로 갔고..
<활불>님께서 한동안 저희한테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활불님이 <샹바라>에 관련해서 해석을 해주시는데
<샹바라>는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고 한다.. 사람은 욕심과 야망을 버리고..
덕을 많이 쌓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평정심>과 <침착>을 유지한다면..
그것이 샹바라라고 한다..
활불님께서 많은 얘기를 해주시는데..
엄청 깨닫게 되고.. 활불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편안해진다..
오늘 그냥 샹그리라에 관련하여 짧게 적어봤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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